통일 멀리잡는 지혜필요/브레진스키 전미백악관 안보보좌관 특별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처음으로 합의돼 49년에 걸친 한반도의 분단구조가 청산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냉전시대의 마지막 유물인 분단이 과연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해결돼 나갈 것인지 미국·일본·러시아등 각국 한반도 전문가들의 기고를 통해 차례로 분석한다.
남북한 정상이 서로 만나기로 합의한 것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남북한정상회담은 분단된 한반도 양측이 더욱 정상적인 관계를 만드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국민은 통일조국에서 함께 살기를 원하고 있고 한국국민은 이같은 소망을 달성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남북한통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려운 작업이다.남북한이 좀더 정상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반도 통일에 더욱 안정적이고 더욱 해결이 쉬운 터전을 마련해줄 것이다.
남북한정상회담은 또 한국민의 미래에 대한 윤곽을 그려줄 수 있다.
만일 남북한정상회담이 건설적으로 진행되고 남북한 관계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다면 동북아국가들은 안보문제에 안도감을 가질 것이다.
일본,심지어 중국은 한반도에서 잠재적 위협이 계속되는 것을 우려해 왔다.따라서 한반도 주변국들은 이번 남북한정상회담을 환영할 것이다.그러나 미국은 대한반도 방위공약을 확고하게 지킬 것이며 장래에도 이같은 공약을 축소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국민은 한국 국민이 원하는 한 대한방위공약 고수를 지지할 것이다.
이는 북한을 위협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한반도에서 1950년 한국전쟁과 같은 전쟁의 재발을 억제한다는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다.물론 한국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일반적인 국제정치차원에서 본다면 남북한정상회담에서 어떤 진전을 이루는 것은 세계냉전체제의 마지막 찌꺼기를 청산하는 의미가 된다.물론 여기에는 남북한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는 인식과 전제가 따른다. 이번 남북한정상회담이 북한의 전략 다양화에 의한 것이 아니고 또 북한이 국제협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과거의 기록을 반복하지 않고,나아가 앞으로 국제협정을 위배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이 헌법적 절차를 무시함으로써 권력승계등 정치부문에서 매우 어려운 거래를 하게되면 평양내부에서 앞으로 어떠한 불안정이 발생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이번 판문점회의에서 정상회담 합의에 나선 것은 국제사회 고립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비록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북한에 커다란 타격을 안겨주게될 유엔안보리 제재의 결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임을 반영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남북한정상회담 수용결정은 북한내부의 어려운 경제사정과도 연계돼 있는 것이 분명하다.북한내 정치 엘리트들마저도 이같은 경제난이 앞으로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오는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남북한정상회담이 성공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창조적이고 쾌적한 정치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양자간의 이견이 해소되고 남북한국민간의 더욱 정상화된 관계로 이어질 것이다.
더욱 정상화된 관계라는 것은 남북한 상호간의 서신교환·전화통화등이 포함될 수 있다.이같은 진전은 북한―미국간의 제네바회담에도 긍정적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제네바에서 열리는 북한―미국 고위급회담은 북한핵무기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북한사찰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 확실하다.이는 남북한정상회담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들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김일성주석의 이번 남북한정상회담 제안에 대해 신뢰성 여부가 제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국제문제는 처음부터 신뢰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여건을 성숙시키는데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대북한관계 개선의 여건을 창조해내는데는 힘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서로 이득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두가지 방법이 모두 사용될 수 있다.북한 김일성주석도 나와 같은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남북한정상은 이번 첫회담에서 너무 많은 것을 이끌어내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왜냐하면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남북한이 내놓고 있는 의제는 너무나 야심적인 것이어서 남북한 모두가 적절하게 만족할 수 없게돼있기 때문이다.남북한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오히려 겸허한 진전을 향해 노력해야할 것이다.
이는 추후에 상호간 안정을 구축하고 나아가 상호개방을 통해 점진적인 양쪽 사회간의 접촉을 증가시키도록하는 것이다.
한반도는 현재 통일문제에서 이같은 정상회담을 통해 더욱 건설적인 정책을 만들어내려는 유행병적인 분위기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통일을 이루었지만 무참한 파괴를 겪어야했다.북한은 이같은 전쟁을 통한 베트남 방식의 통일을 추구해왔다.독일은 어느날 급작스레 흡수통일이 됐다.이는 동서독 국민들간에 사회적 괴리와 심리적 갈등을 초래했다 .
한국은 이같은 대조적인 두가지 유형의 통일방식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통일시점을 더 멀리두고 이를 위해 나아가는 장기전략을 수립해야할 것이다.
이같은 장기전략수립은 판문점에서 핵문제를 접어두고 정상회담을 논의하고 있는 남북한 양측 모두에게 정상회담이 실패할 가능성을줄이고 서로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이는 한국민이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부닥칠,그리고 다음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당면할 진정한 도전이 될 것이다.
◇필자약력 ▲폴란드 바르샤바 출생(28년) ▲하버드대·컬럼비아대 교수(53∼69년) ▲지미 카터행정부 백악관 국제안보보좌관(77∼81년) ▲현 전략및 국제문제연구소 고문겸 존스 홉킨스대·폴니츠국제대학원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