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청와대 성사 어떻게 시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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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 대통령 “중국방문때 중재요청 주효”/“잘 안돼도 밑질것 뭐있나” 밀어붙여/동해 휴전선쪽 선상 회담안도 검토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22일 밤 시내 D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박관용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수석 전원이 참석하고,자정무렵까지 4시간여 계속되는등 모든 면에서 이날의 외식은 두드러졌다.오간 대화도 부담이 없었고 그래서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는 한참석자의 전언이다.
이날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18일 남북정상회담 제의를 수락하고,20일 이를 위한 예비접촉 대북전통문을 발송한 바 있는 청와대는 이틀이 지나도 별다른 기미가 없자 속이 편치 않았었다.김대통령은 전날 만찬석상에서 『김일성주석이 이번에는 회담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장담도 한 바 있다.
그렇지 않아도 「무책임한」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의 전언만 믿고이를 덥석 받은 것은 신중치 못하다는 시비가 있던 터에 북한측의 무반응은 아주 떨떠름할만 했다.
그런데 이날오후 수락 전문이 도착한 것이다.더욱이 전례없이 우리측 제의내용을 수정하지 않고 북한이 수락하여 정상회담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대통령이 오랜만에 기분이 좋은 이유는 정상회담에 상당히 집착하고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핵문제등 남북현안의 획기적 돌파구로서 남북정상의 만남만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김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회담 자체가 지니는 역사성과 그에 대한 국내정치의 효과등을 의식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회담의 성과보다는 만남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남북정상간의 만남만으로도 분단 반세기의 장벽을 허무는 계기가될 것이라는 지론이었다.
김대통령은 이번 회담이 이루어진 배경이 카터의 중재보다는 자신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강택민중국국가주석에게 중재를 요청한 것이 주효했다고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자신의 주도하에 이뤄지는 것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또 일단 성사되면 특유의 정면대결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둘수 있고 설령 잘 풀리지 않더라도 밑질게 없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들이 북핵문제의 해결,2차회담에 대한 보장도 없이 첫회담 장소를 평양으로 하는데 동의케 만들었다.
당초의 전략회의에서는 김대통령의 평양항에 따른 부담,즉『김대통령이 경애하는 김주석을 흠모하여…』운운하는 북한측의 상투적 선전자료화를 차단키 위해 회담장소는 최소한 서울·평양이 아닌 제3의 장소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으나 회담성 사를 위해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김대통령의 결단이 작용,문제삼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제3의 장소로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피하고 남북양측이 서로 꺼릴게 없는 동해안 휴전선지역 해상에서 선상회담을 하자는 안도 유력하게 검토되었었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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