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산책>9.네덜란드의 실내1-후안 미로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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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후안 미로(Joan Miro.1893~1983)에게 평론가는침을 튀기며 「태양의 상징」을 논하고 있었다.눈을 껌벅거리며 참을성 있게 듣고 있던 미로는 한참 후에 그가 작품 속의 빨간타원형을 이야기하는줄 알아차리고 조심스레 한마 디 했다.『그건태양이 아니라 감자인데요.』 그 평론가의 실수는 기실 예정된 것이었다.1924년 앙드레 부르통의 선언으로 시작된 초현실주의는 심리학.문학.미술의 총체적 예술운동이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는 성욕이란 이름의 잠재의식이 행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로트레아몽과 아폴리네르로 대표되는 프랑스 비논리 시의 전통이 문학적 바탕이 되었고 뒤샹의 영향을 받은 우연주의자들 이 합세했다. 그리하여 1920~30년대 유럽 회화의 결정적 세력으로 부상했으며 2차대전 후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로 연결되어 한 세대의 세계 미술을 풍미하는 과정에서 과대포장된 것이 초현실주의였던 것이다.그 평론가의 실수는 일종의 위광 암시에 의한 자기 최면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예술이란 예술적 양식이나 미학적 규칙이라기보다 삶에 대한 태도라 할 수 있다.카메라의 도전에 발끈했던 과민반응들 중에서 초현실주의는 카메라가 갖지 못한 내면의 눈을주목했다.
그들은 상상력을 극대화한 꿈과 환상과 무의식을 무기로 선택했다.달리의 꿈과 샤갈의 환상,그리고 미로의 무의식을 합하면 초현실주의 회화의 큰 줄기가 보이게 된다.
특히 에른스트와 마송을 포함해 미로에게 중요했던 것은 오토매티즘(automatism),즉 자동기술법이었다.연필을 들고 머리 속에 생각나는 단어를 종이 위에 아무런 의식의 통제 없이 그냥 내뱉으면 초현실주의 시가 되고,아이들 낙서하 듯이 괴발개발 환칠을 하면 바로 초현실주의 회화가 되는 것이 오토매티즘의방법론이다.
여기에서 우연의 개념이 개발되었다.초현실주의에 있어서 우연이란 아카데믹한 미술적 관념을 일단 접어두고 상상력과 환상.충동등에 의해 그림을 그리거나 만든다는 뜻이다.이 우연의 개념은 에른스트에 의해 극대화돼 프로타주yfrottag e)라는 일종의 탁본 방식,예를 들면 동전을 종이 밑에 깔고 크레용 등을 칠해 만드는 유의 그림이 개발되기도 했다.
우연의 개념은 1950년대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에 의해 도입되어 이벤트라는 이름의 행위미술과 소음을 포함하는 전위음악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당연히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로와 에른스트 등의 작품은 신화적인 광휘에 싸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상 그 신화의 껍질을벗기고 나면 그것은 손재주가 탄로난 마술처럼 때로 싱거울 수도있는 그림이 되는 것이 또한 이런 그림이다.
(다음 주에는 마르크 샤갈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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