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느 시민의 지하철파업 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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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짜증스럽고 울화통이 치민다.
어제만 해도 지하철 파업이라는 신문을 보고 서둘러 출근길에 나섰다.지하철역 대신 끝없이 줄을 서있는 버스정류장의 맨 뒤쪽에 서는 내자신이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화가 났다.
『시민이 뭐 지하철노조의 대리전쟁이라도 치러주는 용병이란 말인가.』 기관사들의 주장이 옳은지,정부가 옳은지 솔직히 말해 잘은 모른다.그러나 시시비비는 노.사간에 가릴 일이다.
기관사들은 왜 자기네들 협상마당에 시민들을 끌어들이나.불편과고통은 시민들의 몫이니 결국은 자기네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시민불편을 담보로 정부에 압력을 가해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것인가.
자가용을 가진 사람들이야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민들에게는 지하철이 발이다.지하철의 파행운행은 양발에 족쇄를 채우고 다니라는 것과 같다.
시민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꼬박꼬박 세금내고,저축하고,열심히일한 죄밖에 없다.지하철요금이 올라도 군소리없이 차표를 사고,전동차내의 찜통 더위에도 흐르는 땀을 말없이 닦아가며 중금속오염이다 먼지오염이다 하지만 그저 제시간에 와주는 것만도 고마워얼른 올라탄다.
퇴근길에는 그래도 지하철은 운행한다는 소식에 어쩔도리 없이 장시간을 기다려 지하철을 탔다.이 차를 놓치면 영영 못탈세라 밀쳐대는 손길에 떼밀려 간신히 몸을 밀어 넣었다.
찜통같은 전동차속에서는 탄식과 한숨과 자조와 분노가 흐르고 있었다.『더러워서…전셋돈 빼서라도 자가용을 사야지』『무인운전 시스템을 도입할 수는 없나요』『기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나요.경제적.정신적 피해말예요.』 물론 기관사들도 할말은 있을 것이다.박봉에,고된 업무에,그것도 칙칙한 땅속에서두더지처럼 생활한다고.그리고 노동자들이야 힘이 없으니 파업이 가장 강력한 대응수단이라고.
그렇지만 이러한 고충이 시민불편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그건내가 힘드니 너도 힘들어라 하는 물귀신작전에 다름아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떠한 수단이라도 동원하겠다는 발상은 더이상 용납될 수 없다.
어제 신문에서 읽은 철도와 지하철 기관사들의 월급액수를 보고사실은 깜짝 놀랐다.직급에 따라 차이가 있으리라는 것은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1백70만~1백90만원씩 받는 월급쟁이가 우리사회에서 몇%나 될까 생각하니 『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도대체 지하철을 타는 이용자들 중에 몇명이나 이들 기관사 봉급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더 이상 시민들이 볼모일 수는 없다.시민을 볼모로 한 지하철파업이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이번에는 조금 불편하고,고통스럽고,짜증나더라도 참아야겠다.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파업의 고리와 시민 고통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하기 때문이 다.콩나물버스에 매달려 올라타는 말없는 시민들의 「침묵의 소리」는 『고통분담을 통해서라도 이 기회에 곪아터진 관행을 뿌리뽑겠다』는 것임을 파업근로자들은 똑바로 인식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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