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의 비핵화 없이 평화협정 체결 안 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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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14면

빅터 차 미 조지타운대 교수
전 미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담당 국장

주변 4강의 시각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 가운데 남북 정상회담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더 많은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더 많은 협력이 이뤄진다면, 또 1992년 채택한 남북한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재확인한다면 누가 정상회담을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북한 지도자로부터 “올해 말까지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무기를 신고하며, 2008년까지 핵을 폐기하겠다”는 말을 들어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의제화에 대해 한국 내에 강력한 반대 의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국민들의 정서와 배치되는 의제를 논의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평화선언’도 이슈인데, 만약 노 대통령이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평화선언을 하려 할 수도 있다.

다 좋다. 그러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기 전 평화선언을 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평화협정(Peace treaty)은 더욱더 그렇다. 솔직히 북한은 한국과 평화협정을 맺는 것을 원치 않는다. 원하는 상대는 미국이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번 시드니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장에서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 후 밝혔듯이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분명히 연계시키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 없이 평화협정 체결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도 ‘평화선언’이 나왔다고 해서 ‘더 이상 걱정할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정도로 사려가 깊다고 생각한다. 남북 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를 이탈하거나 관심을 분산시키는 게 아니라 프로세스를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한 모종의 큰 선물을 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생각엔 김 위원장이 6자회담 상의 이슈에서 내놓을 무엇이 있다면 미국에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기가 수주일밖에 남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줄 것 같진 않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를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그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했다(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 핵 문제를 이야기하라는 것은 가급적 싸움을 하라는 얘기”라며 평화체제를 주 의제로 하겠다고 밝혔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북한의 지도자와 직접 대면해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면 이때야말로 ‘비핵화’라는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남북한이 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 합의를 해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6자회담 불능화 단계에서 합의되는 패키지들과 반드시 조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내용이 합의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돼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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