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글로벌 脫동조화쉽지 않은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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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21면

미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속도를 줄이면 세계 경제도 덩달아 감속하는가. 미국 경제가 침체 조짐을 뚜렷이 보이면서 다른 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상호 의존성이 강한 경제끼리 경기와 주가·금리·환율 등이 같이 오르내리는 현상을 동조화(Coupling)로 부른다. 세계 경제가 하나로 연결되고, 상호 의존성이 날로 깊어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동조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투자 자산에 국경이 없어지면서 세계의 투자자들이 똑같은 종류의 자산에, 똑같은 거래 방식으로, 거의 동시에 몰려들어 함께 홍역을 치르는 동조화의 역풍도 심심찮게 경험한다.

반면 미국 경제가 감속해도 유럽, 그리고 중국 등 신흥국들이 강한 성장을 해 세계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능히 뒷받침할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 경제와 여타 경제의 연결고리를 떼어내는(de-link) 이른바 글로벌 탈(脫)동조화(Decoupling) 가설이 그것이다.

미국 주택경기가 침체되어도 세계가 미국인의 주택을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계 경제의 침체로 연결될 수 없다는 얘기가 눈길을 끈다. 유럽연합(EU) 주요 13개국의 대미 수출비중은 8%여서 미국 경제가 침체해도 별 영향이 없고, 일본은 수출 비중이 24%지만 감내할 힘이 있으며,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4개국의 신성장엔진이 탈동조화를 이끌 수 있다는 주장들이다. 과연 그럴까.

세계 경제 성장의 2대 엔진은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은 수요-소비 엔진이고 중국은 공급-생산 쪽이다. 미국의 소비규모는 9조 달러(2005년)다. EU 전체 소비보다 20%가 많고, 일본의 3.5배, 중국의 9배다. 미국의 무역적자 8000억 달러는 세계가 그만큼 미국 수요에 과다 의존함을 의미한다. 미국의 소비가 퇴조하면 여타 국가의 국내 소비, 특히 민간소비가 이를 메워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비비중이 낮은 일본(56%)·중국(38%)은 물론이고 EU도 역부족이다.

수출시장의 경우 캐나다와 멕시코는 대미 수출의존도가 80% 이상이고, 중국은 40%다. 일본과 EU의 대아시아 수출의 경우 원자재나 중간재로 수출된 다음 최종 소비재는 미국 시장으로 향하고 있어 이들의 수출 역시 미국 경제의 침체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의 공급-생산 체인은 미국의 수요와 맞물려 돌아간다. 그 때문에 중국이 성장의 독립된 축으로 세계적 감속을 저지하기에 아직은 역부족이다. 미국 경제의 침체가 중국을 거쳐 일본·대만·한국, 그리고 호주·뉴질랜드·러시아 등지로 자연스레 파급된다.

탈동조화를 위해서는 통화·금리·환율 등 정책의 자율성 확보가 긴요하다. 이 역시 미국 달러와의 연결고리 때문에 미국 정책과의 독립적 운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국 경제가 세계의 성장엔진으로 기능하려면 최소한 연 2.5% 내지 3% 성장은 견지해야 한다. 벌써부터 2% 미만 성장이 예견되고 ‘2008 침체’ 얘기들도 나돈다. 고용침체는 이미 현실이 됐고, 꼭 필요한 소비마저 내리막길이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기준금리 인하가 사상 최대의 달러화 하락을 불러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달러와의 페그(교환비율 고정)를 유로화로 바꾼다는 루머까지 나돌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한 달러’를 외쳐댔던 부시 행정부는 지금은 말이 없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벤 버냉키 의장의 금리인하 조치는 시장에 굴복한 것이며 헬리콥터로 공중에서 일시 유동성을 공급한 ‘헬리콥터 머니’로 비판받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의 건강과 그 정책 지혜에 대한 바깥 세계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탈동조화는 희망사항일 뿐 아직 현실은 아니다. 언젠가 몰려올 미국발 불황 파도타기에는 능숙한 체질을 기르는 길 이외의 신통한 방도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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