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진실성이 성패좌우/남북정상회담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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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건없으나 협상하면 의중 가늠/안보리 북제재논의는 일단주춤
김일성 북한주석이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을 통해 제의한 남북정상회담을 김영삼대통령이 즉각 수락함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노력은 물론 전쟁위기감까지 감돌던 한반도 상황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북핵 게임」은 또다른 출발선에 서게 된 것이며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지 모른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청와대측은 유엔안보리의 제재논의가 북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반해 남북정상회담은 아무 조건없이 남북문제를 논의한다는 점에서 별개의 사안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양자가 깊게 맞물려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돼 핵문제를 포함한 남북주요현안에 대해 의미있는 논의가 진전된다면 북한에 대한 국제제재문제는 자연히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어있다.
청와대측은 정상회담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표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번 회담은 종전과는 달리 시기·장소·협의대상등이 무조건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김대통령이「핵무기를 가진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93·6·3·취임 1백일 회견),「핵개발 저지에 도움이 된다면 김일성주석과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94·2·25·취임1주년 회견),「핵투명성 보장을 위한 사찰을 조건 없이 수용한다면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용의가 있다」(94·5·4·민주평통 다과회)는등 상황에따라 정상회담의 조건을 바꾸어 왔으나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우리측의 의지는 분명하지만 김일성주석의 의중이 과연 무엇인지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또한 사실이다.
김일성주석이 국제사회의 압력·제재를 일순 모면하려는 책략인지,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 보려는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제의로 핵문제에 대한 초점이 흐려졌으며 김일성주석이 생각하는 대로 모든 양상이 바뀌게 됐다고도 볼수 있다.
즉 북한의 페이스로 끌려가던 핵문제의 흐름을 바꿔보려던 한미양국의 기도는 이번 정상회담 건으로 인해 일단 무산된 감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카터전대통령이 18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정상회담이 제기된 배경을 보면 진지성이 의심되는 구석이 없지 않다.
그는 그간의 정상회담이 무산되어온 사실에 대한 원칙론적 유감표명을 하며 그렇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원칙적인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이『아직 속단할 수 없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요인때문이다.
결국 아직은 원칙론 차원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양측이 정상회담 개최원칙에 합의하고 이를 위한 실무협의를 진행시키기로 한 만큼 당분간 한반도에서의 긴장은 누그러질 게 예상된다.
동시에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논의도 소강상태를 맞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직접적 당사자간의 협의가 진행되는 판에 제3국들이 굳이 끼어들 가능성은 그만큼 줄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은 향후 전개될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양측실무자간 협의 과정을 지켜 보면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
실무협상이 지지부진해 진다면 북한의 의도가 제재를 피하기 위한 전술이었음이 밝혀질 것이다.
우리 대북전문가들의 대다수는 김일성주석의 정상회담 제의의 진실성에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으며 카터라는 돌발변수의 개입으로 안보리를 통한 제재마저 흐지부지 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김현일기자〉
◎절차와 의제/이번엔 특사교환 안거칠듯/김대통령 먼저 평행행 유력/핵문제 포함싸고 난향예상
김영삼대통령이 18일 김일성 북한주석의 남북정상회담 제의 수락을 계기로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 절차와 의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북한은 지난 80년대 이후만 계산하더라도 모두 12차례나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회담 절차와 의제 설정에서 난항을 겪고 매번 무위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실무회담→정상회담이라는 2단계 절차에 따라 추진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대통령이『빠른 시일내 김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김주석의 제의에 대해『즉각 수락한다』고 말하는등 양측 정상이 모두 정상회담의 신속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될 경우 그것은 양측이 지난2월 추진한 실무접촉→특사교환→정상회담이라는 3단계 절차보다 단순화된 2단계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이 구성된다면 그 대표는 부총리급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남북은 지난 2∼6월중 특사교환을 위해 차관급을 수석대표로한 실무회담을 구성했으니만큼 정상회담을 위해선 자연히 실무 대표단의 급도 상향 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한편 정상회담의 형식은 김대통령이 평양을 먼저 방문한 이후 김주석이 서울을 나중에 방문하는 상호방문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상회담의 가장 큰 문제는 의제 설정 작업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현재 예상되는 정상회담 의제는 크게 ▲핵문제 ▲남북관계 개선 ▲남북기본합의서 이행 ▲남북경협 ▲이산가족문제등 다섯가지 분야를 꼽아볼 수 있다.
정부 한 당국자는 18일『김일성이 김대통령에 전달한 메시지는 조건없는 남북회담이지만 카터의 기자회견을 잘 분석해보면 북한은 정상회담의 의제에 있어 핵문제와 관련없는 문제를 다루자는 의도를 갖고 있다』며 『남북정상회담은 초기단계부터 국내여론과 의제설정 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최원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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