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 뮤지컬 스타 박동하 고국 무대 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해 3월 일본 도쿄에서 한국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무대에 올랐다. 기자가 무대를 찾은 날 객석은 조승우를 보러 온 일본 중년 여성들로 가득찼다. 그러나 로비는 또 다른 배우 한 명으로 시끌벅적했다. 100여명의 여성들에 둘러싸여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던 사람은 관람차 공연장을 찾은 박동하(33·사진)씨였다.

 한국에선 낯설지만 박씨는 일본에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배우다. 일본 최고 히트 뮤지컬로 손꼽히는 ‘엘리자베스’의 황태자역을 2004년부터 3년간 계속 맡아 일본 뮤지컬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NHK의 대표 한류 프로그램 ‘안녕하십니까’의 진행자로 대중적 인기도 높다.

 이렇게 한국 출신 뮤지컬 스타로, 또 ‘한류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는 그가 오랜만에 고국 무대에 오른다. 10월 23일부터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공연되는 ‘김종욱 찾기’다. “중간에 잠시 국내 공연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일본에서 2000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니 꼬박 7년 만이네요. 신인때보다 더 떨리고 두렵고 설렙니다.”

 그의 삶은 ‘뮤지컬을 위한 일생’이라는 말로 축약할 수 있다. 어릴때부터 피아노 잘 치고 노래 잘 부르는 그를 어머니는 방송국으로 데려갔다.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아역 탤런트로서 처음 출연한 프로그램은 공교롭게도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뮤지컬. “방송은 기본이었고, 전국 순회 공연도 했어요. 이후에도 ‘사랑의 집’ ‘폭풍속의 아이들’ 등 방송용 뮤지컬 무대에 계속 섰죠. 따지고 보면 ‘국내 1호 뮤지컬 아역 배우’가 아닌가 싶어요.”

 그는 대학에서도 뮤지컬을 하고 싶었다. 제대로 된 뮤지컬 배우를 위해선 ‘춤이 기본’이라는 생각에 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롤 모델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안무가 제롬 로빈슨.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기에 고 3때는 아예 집을 나왔다. 학교-무용학원-독서실을 쳇바퀴돌았다. 마침내 중앙대 무용과에 발레 전공으로 합격했다. “대학 면접때 왜 무용을 택했냐는 질문에 ‘뮤지컬의 기본을 다지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교수님이 혀를 끌끌 차시더라구요.”

 대학에서도 계속 사고(?)를 쳤다. 2학년때 뮤지컬 전문 동아리 ‘브로드웨이’를 만들었다. 노래·춤·연기 연습은 물론, 이론 공부까지 병행하자 입소문이 확 퍼졌다. 축제 때도 불려나가고, 몇몇 뮤지컬에 앙상블로 출연할 수 있었다. 탄탄한 기본기 덕분에 배우 데뷔도 빨랐다. 99년엔 ‘페임’의 남자 주인공역을 맡아 신인상 후보에 오를만큼, 촉망받는 신인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그는 보장된 미래를 박차고 일본행을 택했다. “더 넓은 세계를 온 몸으로 부딪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오디션을 거쳐 시키 극단에 들어갔지만 일본 생활은 고통스러웠다. 좁다란 단칸방에서 월급 60만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했다. 다른 동료들이 도시락을 사먹을때 돈이 없는 그는 복숭아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웠다. 주위의 시선에 “나 원래 통조림 너무 좋아해”라며 자존심을 세우곤 했다. ‘깡통맨’은 그를 따라다닌 별명이었다. 그렇게 7년을 버텨 일본 정상급 뮤지컬 스타로 자리잡은 것이다. 최근엔 일본에 첫 수출된 한국 창작 뮤지컬 ‘달고나’에 출연하기도 했다.

 “거창할 지 몰라도 한국과 일본의 뮤지컬을 잇는 메신저가 되고 싶습니다. 양쪽에서 다 쓴맛을 맛보았으니 누구보다 잘 하지 않을까요?”
 

글=최민우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