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D-3] 의제·일정 불투명 '기묘한' 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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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28일 KT 직원들이 프레스센터가 설치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통신지원센터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오전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을 찾아 다음의 메시지를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남북 정상회담 의제를 사전에 공개하는 건 외교상 관례도 아니고 상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이런 점을 국민들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와 모든 것을 소상하게 공개하겠다."

평양 정상회담이 사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청와대 안에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의제.의전과 일정 등의 언론 보도에 특히 민감하다.

2000년 당시 북측은 정상회담의 의제와 일정 등이 미리 보도된 점을 문제삼아 회담 이틀 전 날짜를 하루 연기한 적이 있다고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이 주장한 바 있다. 북한 사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선과 관련된 사항은 철저한 비밀주의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기묘한 프로토콜은 7년이 흘러도 여전하다.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을 언제 어디서 영접할지, 정상회담은 언제 어디서 몇 차례나 열리는지 정부는 깜깜한 상태다. 다른 나라와의 정상회담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일들이다.

천 대변인은 "2000년 회담 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불투명한 상황을 전제로 준비하고 있다"며 "과거보다 일찍 정보를 알고 대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 회담 때 북측은 정상회담 당일 오전까지도 김 위원장의 참석 여부를 알려주지 않았다. 일각에서 명목상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회담 10분 전 김정일 위원장의 참석이 통보됐다고 한다.

정부는 북한의 특수한 정치문화에서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입장이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은 "남북 정상회담은 다른 정상회담과 달리 운영되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평양에서의 2박3일 동안 경호 최종 책임을 북측이 지는 만큼 일정이 미리 공개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구상 가다듬는 두 정상=노 대통령은 정상회담 발표 직후부터 북한 전문가와 2000년 회담 경험자들을 만나왔다. 특히 김 위원장을 수차례 만난 임동원 전 국정원장으로부터는 장시간 과외도 받았다.

임 전 원장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분석한 김 위원장의 회담 전략과 회담장에서의 주의사항 등을 A4 용지 50여 쪽 분량에 담아 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분야별로 구성된 북한 전문가들을 초청해 특별수업을 받았고, 각 부처의 태스크포스에서 작성한 보고서도 숙독했다.

노 대통령을 만난 한 전문가는 "북한에 대해 많은 질문을 쏟아내 놀랐다"며 "남북관계와 북한체제에 대한 이해력이 높았다"고 말했다.

주변의 도움을 받는 노 대통령과 달리 김 위원장은 스스로가 최고의 대남 전문가다. 김 위원장은 1973년 노동당 비서로 임명된 뒤 줄곧 남북관계를 직접 챙겨왔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은 물론이고 YTN과 스포츠채널까지 시청하고 있다고 한다. 2005년 김 위원장을 만난 한 인사는 "김 위원장은 남한 사람이 놀랄 정도로 남한의 동향과 정세에 밝았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일간지와 인터넷도 김 위원장의 교재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때 특별열차에 동승했던 콘스탄틴 폴리콥스키 전 러시아 대통령 전권대리는 "특별열차에 위성통신으로 연결되는 인터넷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정보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과거 남한 신문을 꼼꼼히 읽었는데 최근에는 시력이 약해져 요약문을 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승희.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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