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 민간인 매니어 30명 vs 현역 대항군 11명 '서바이벌 맞짱' 누가 이길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28일 강원도 인제군 육군 과학화전투훈련장의 참호 속에서 서바이벌 게임 동호회 헬스 엔젤스(Hell.sAngels) 회원들이 .과학화 전투 경연대회.를 하루 앞두고 공격 훈련을 하고있다. K2 소총 총구에 부착된 빨간색 장비는 레이저 발사장치인 마일즈(MILES)다. [인제=김형수 기자]

K2 소총의 가늠자 사이를 노려보던 김용(33)씨가 숨을 멈췄다. "탕~." 총구 끝에 달린 마일즈(MILES)에서 발사된 '레이저 탄환'이 적군의 가슴을 살짝 비켜 나갔다. 이어 동료들의 총성이 이어지자 그 틈을 타 김씨는 고지의 좌측을 돌아 정상을 향해 내달렸다.

"탕~탕." 정상 부근에서 두 발의 총성이 더 들렸고 김씨는 어느새 고지에 올라 붉은 삼각 깃발을 흔들고 있다. 김씨가 두 발의 총성으로 마지막 적을 제압하고 고지의 삼각 깃발을 빼든 것이다. 오늘 전투의 승자는 군인(적군)이 아닌 민간인 김씨다. 그는 중소 로고 제작 회사의 사장이다. 경력 14년차의 서바이벌 게이머.

28일 김씨와 같은 서바이벌 게이머 300여 명이 세계 각국의 군복을 차려 입고 강원도 인제군 남면 육군 과학화전투훈련장에 집결해 훈련을 했다. 육군의 '지상군 페스티벌 2007'의 프로그램으로 개최되는 제1회 '과학화 전투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9명이 여성이다. 제대한 지 꽤 된 30~40대지만 이들은 사격 실력과 군사 지식이 직업 군인 못지않은 '군사 매니어'다.

이들은 29일 과학화전투훈련단 소속 현역병들과 정식으로 일전을 펼친다. 현역병은 대항군으로 나선다.

30명이 한 팀을 이룬 동호인들은 마일즈 장비가 장착된 K2 소총과 K3 기관총을 잡고 11명의 대항군 분대가 지키는 고지를 누가 더 빨리 점령하는지를 겨룬다. 30분 이내에 훈련된 대항군을 전멸시키고 500m 전방의 언덕 위에 꽂힌 깃발을 뽑아 흔들어야 육군참모총장 표창에 도전할 자격이 생긴다. 이들의 공격 결과는 중앙통제소의 컴퓨터로 자동 전달돼 개인별, 부대별 성적으로 분류된다.

김씨가 이끄는 '헬스 엔젤스(Hell's Angels)' 동호회가 주축이 된 팀은 이날 모의 훈련에서 25분 만에 고지를 점령했지만 전력의 70%를 잃었다. 팀원 중 20여 명이 사망 또는 중상이란 얘기다. 막무가내로 일렬로 진격하는 바람에 피해가 늘었다. 팀 회의 결과 29일 '실전'에서 김씨는 팀을 3개조로 나누어 고지를 공략하기로 했다. 동료인 진호(37)씨가 이끄는 1개 분대가 중앙에서 지원사격을 하는 사이 김씨가 이끄는 좌측의 분대와 또 다른 분대가 돌격 임무를 맡기로 했다.

부산에서 오전 4시에 출발했다는 김기룡(32)씨는 "사격 실력이 현역 시절보다 더 좋아졌다"며 "현역 11명쯤은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경력 15년차인 그는 독일 연방군 차림이었다. 이들이 마일즈 장비를 써 본 것은 이번이 처음. 경기도 분당에서 온 팽일호(35)씨는 "평소 쓰는 BB탄과 달리 마일즈 장비는 총탄이 보이지 않아 실감은 덜 나지만 전투 결과가 컴퓨터로 일목요연하게 분석돼 전략을 더 많이 연구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경기에 거는 동호인들의 기대는 높았다. 행사 자체가 "더 많은 민간인이 체험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이들의 요구를 육군이 받아들여 열렸다. 8월 말에 진행된 참가자 모집은 3일 만에 끝났다.

◆군사 매니어의 세계=서바이벌 게임 동호인은 전국적으로 5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포털 사이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카페만도 500~600개에 이른다. 성인클럽의 주축은 30~40대 남성 직장인이지만 간혹 홍일점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한 달에 2~3회씩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재개발 직전의 텅 빈 마을을 찾아 게릴라전을 즐긴다. 무기는 플라스틱 소재의 반지름 2㎜짜리 'BB탄'을 장전하는 모의 총기다. 전동식 또는 가스충전식 발사장치를 갖춘 총기는 '장난감'이지만 모양과 무게는 실제 총과 거의 같다. 게이머 상당수는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 매니어들이다.

임장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마일즈(MILES)=다중 통합 레이저 교전 장치(Multiple Integrated Laser Engagement System). 총에는 레이저 발사 장치를 부착하고 몸에는 센서가 부착된 멜빵과 벨트를 차 실제와 가까운 교전을 재현하는 장치다. 레이저가 맞는 위치에 따라 병사의 사망 여부와 부상 정도가 중앙통제소의 컴퓨터와 본인에게 전달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