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바둑칼럼>沖岩 왕위전예선서 독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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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프로바둑의 예선전은「생존」이라는 측면에서 정상들의 싸움보다 훨씬 절박하다.특히 王位戰같은 큰 棋戰이 시작되면 관철동에 운집한 프로들의 결의는 거의 悲願의 냄새마저 풍기게 된다.
예선대국료는 15만~20만원.8명이 겨루는 본선리그는 승자가한판에 1백20만원,패자가 90만원.살아남으려면 본선에 가야하고 본선에 가면 길이 열린다.본선무대는 프로바둑의 꽃이며 바둑의 상류사회로 가는 징검다리다.
그러나 본선 8자리중 4자리는 이미 지난해 성적 우수자들이 차지하고 있다.1백20여명의 예선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티켓은 단 4장뿐이다.5월26일 초단~5단이 겨루는 王位戰 1차예선에서 12명이 선발되어 고단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2차예선에 합류했다.여기서 50여명이 4개조로 나뉘어 본격 대결이 시작된다.아래의「전적표」는 각조 8강전부터를 옮긴 것이다.
조별 준결승에서 영남의 대부 河燦錫8단은「부동의 랭킹5위」梁宰豪8단에게 꺾였고 대전의 강자 李東奎7단도 신예에게 덜미를 잡혔다.王位戰 예선무대는 점차 충岩사단의 독무대로 변해갔다.
金秀壯9단도 지난해 신인왕 崔明勳3단에게 꺾였고 최근 名人戰의 도전자가 된 林宣根8단도 복병을 만나 탈락했다.분전하던 55세의 노장 高在熙7단도 충岩의 장로격인 許壯會7단(40)에게꺾였다.대국장 벽에 나붙은 대진표에는 피를 토하 듯 선배기사들의 이름이 지워져갔다.
이리하여 예선 결승 8명중 張秀英9단을 제외한 7명이 충岩출신이었다.
결승전은 6월7일.그러나 가슴졸이던 6일 난데없는 부음이 날아들었다.입단 6개월만에 大王戰 승자결승 4강,패왕전본선에 진출했던 충岩출신의 유망주 韓賞洙초단이 공군에 입대한지 한달만에돌연 사망한 것이다.번 돈을 한푼도 안쓰고 시골 집에 보내던 효자 韓賞洙는 막 날개를 펴려다 꺾였다.충岩출신들은 의구심과 슬픔속에서 밤새워 조문했다.
이바람에 천재지변이 아니면 연기될수 없다는 대국일정은 저절로연기되고 말았다.
6월11일의 결승전.도전기보다 진한 승부여서 패할 경우 후유증이 석달간다는 예선 결승전이다.이날 이목을 집중시킨 사람이 文容直4단이다.文4단은 충岩.서강대를 나와 바둑계를 떠나 있다올해 2월 서울대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은 뒤 비로소 시합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정치학박사가 1차부터 6연승해 결승에 올랐다.상대는 張秀英9단.그가 진다면 4장의 본선 티켓은 모두 충岩이 차지한다.
張9단은 승리한뒤『바둑 외길 인생의 명예가 이 판에 걸려 있었다』며 고심참담의 시간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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