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10인이 말한다] ①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월간중앙 “가난과 어머니는 나의 스승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단칸방에서 한 식구가 살며 하루 두 끼를 술지게미로 때웠다는 이 후보의 지독히 가난했던 어린 시절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비단 그만 그럴까? 명사 10인으로부터 ‘잊지 못할 2가지 키워드’를 들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 전 정통부 장관
“헌 참고서 팔아 고등물리와 고등수학 원서 공부하며 가난의 설움 달랬다.”

가난. 그리고 수학물리학

오랜만에 옛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됐다. 정말 잊고 지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오늘의 이 자리에 오기까지 무엇이 직접적 계기가 됐을까?

내 인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것 두 가지를 꼽자면 아무래도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과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진학하면서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수학과 물리학’을 들 수 있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 너무나 가난했던 기억밖에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963년도에 중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해야 했는데, 그 때 나는 친구들이 다들 갖고 있던 전과(참고서) 한 권 없었다.

당시 100원인가 200원 하던 사친회비(육성회비)조차 내지 못하던 형편이었다. 때문에 창피하기도 했고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형에게 얻어맞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꾼 꿈이 지금도 생생하다. 놀이터의 철봉 아래 떨어져 있는 돈을 주워 참고서를 사는 꿈이었다.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그런 꿈을 다 꿨겠는가? 그 꿈을 꾸고 나서 며칠 있다 학교에서 600원을 장학금으로 받았다. 아무래도 그 꿈이 괜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가난 때문에 집념이 생긴 것 같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남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는 다짐도 그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번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할 무렵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입학시험을 치르고 나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어떤 선배로부터 들은 전자공학 전공에 관한 이야기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그 분의 이름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ROTC 제복을 입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 선배가 전자공학과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나는 “전자공학과가 뭐 하는 곳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분은 아주 간단하게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공부하는 학과”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 선배는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나는 이튿날 곧바로 청계천 헌책방으로 가서 고등학생 때 쓰던 교과서와 참고서를 모조리 팔아 그 돈으로 대학 2~3학년생들이 배우는 고등미적분학과 물리학 원서를 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수학과 물리학은 반도체 분야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과목이다. 다행히 원래 이 두 과목은 내 흥미와도 맞아떨어졌다.

당시에는 반도체 관련 전공과목조차 없었다. 물리전자라는 비슷한 과목 한 두 개가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응용물리와 응용수학 등 고급 과정을 스스로 찾아 공부했다.

내가 쓴 반도체 관련 석사논문은 초유적인 것이다. 그때가 1970년대 초였는데, 논문 제목이 한글로 풀어 쓰자면 ‘반도체 표면 에너지 상황에 관한 연구’쯤이 될 것이다.

기획·진행┃오효림_월간중앙 기자 (hyolim@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