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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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 (3) 말없이 걷고 있던 태수가 길남을 위로하려고 나지막하게 한마디 했다.
『내 생각엔 그래도 그만하기가 다행이다.』 『다행은 무슨 얼어죽을 다행.다리병신이 된 건데,죽는 거 보다 나을 것도 없지.』 춘식의 말에 태수가 더욱 목소리를 낮췄다.
『이제 돌아갈 거 아니냐.다리 잘린 사람을 여기 더 붙잡아 둘 리도 없고,안 그렇냐?』 『병신이 돼서도 고향에만 가면 된다 그거냐?』 『생각하기 나름이다.여기서 몸 하나 온전하다고 해서 집에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병원 앞에는 어둠이 가득했다.병실 쪽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는 있었지만 그것마저 커튼으로 가려 있어서 어두컴컴했다.
목조 단층 건물 앞으로는 누가 심었는지 몇 그루의 나무가 전정을 해서 모양새를 갖추어 가며 자라고 있었다.
손잡이를 당겨 보았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잠겼는데.아무도 없나 봐.』 『불러 볼까?』 『간호부가 있어도 있을 거 아니냐.』 셋은 병원 앞을 서성거렸다.
『저녁 먹으러 갔을 테니까 좀 기다려 보자.문 닫혔는데 두드리고 하느니,여기서 좀 있지 뭐.』 작은 단층 단독건물인 병원은 섬의 가장 후미진 곳에 있었다.자신들이 걸어올라온 좁은 길이 희끄무레한 어둠 속으로 바라보였다.길남은 차라리 병원에 아무도 없었으면 싶다.누군가 있어서 문을 열어준다고 해도 차마 다리를 자르고 누워 있 을 명국을 볼 자신이 없다.그 얼굴을 어떻게 보며 무슨 말을 할 수나 있을 것인가.
길남이 태수를 돌아보았다.
『네가 한 말… 나도 그 생각을 안한 건 아니다.어떻든 결과적으로야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다리 못 쓰는 사람에게까지탄 캐라고 할 리야 없으니까.그런데 불쑥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니? 고향이 대체 뭐란 말이냐.살아서 고향이고 ,살자고 고향이다.절뚝거리는 다리병신,그렇게 돌아가도 고향은 고향이란 말인가 생각하면,가슴이 무너지는 거만 같고,누군들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살겠냐마는… 이것도 팔자라면 해도 너무한다 싶고,다 죽이고 불싸지르고 그렇게 뒤집■엎어버렸으 면 싶은 게,막 가는 생각밖에 안나는데 어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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