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축 난개발로 '귀경 병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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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박성인(53)씨는 추석 당일인 25일 오후 3시쯤 경남 부곡을 출발했다. 박씨는 줄곧 경부고속도로를 고집했다.

천안분기점에서부터는 거북이걸음을 면치 못했다. 서울에 도착한 시각은 다음날인 오전 6시. 꼬박 15시간이 걸렸다.

이번 추석 귀경길은 유독 길고 험난했다. 예년보다 5~6시간 이상 더 걸린 경우가 허다했다. 실시간 교통정보도, 우회로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문제는 명절 길만이 아니다. 주말이면 수도권 주변 도로 대부분은 예외 없이 긴 정체 구간을 만들어낸다. 현재로선 뾰족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명절과 주말의 '귀경 병목'이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폭발적 교통량이 귀경 병목의 큰 원인=추석 당일인 25일에만 전국 고속도로를 이용한 차량이 420만 대에 달했다. 사상 최다였다. 주변 국도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다. 곳곳에서 귀경 차량에 행락 차량, 성묘 차량이 몰리면서 도로가 포화 상태가 된 것이다. 한국도로공사 변상훈 부장은 "현재 도로 상황으로는 일시에 폭증하는 교통량을 소화하기에 역부족"이라며 "앞으로도 명절에 유사한 경우가 생기면 극심한 정체를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고속도로 분기점에서의 병목도 정체에 한몫했다.

귀경길 정체가 극심했던 경부선은 민자 도로인 천안~논산 고속도로와 만나는 천안분기점 부근이 문제였다. 지름길로 알려진 천안~논산 고속도로에 정체를 피하려는 차량이 한꺼번에 몰렸다. 그러나 경부선도 지체여서 분기점 부근 병목 현상이 더 악화됐다.

분기점 부근의 천안삼거리 휴게소 진입 차량이 우측 차선으로 몰리며 다른 차량의 흐름을 막기도 했다. 천안삼거리부터 수도권까지 25일 오후부터 26일 밤 사이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정체가 빚어진 이유들이다.

갓길 운전이나 버스 전용차로를 넘나드는 얌체 운전 등도 흐름을 악화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주말.출퇴근 체증은 경부선 축의 집중 개발 탓=수도권 고속도로의 상당수는 출퇴근 시간과 주말에는 제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다. 주말 오후 5~7시 시속 30㎞ 미만의 정체 구간과 부분정체 구간이 전체 고속도로의 80%를 넘는다. 출근시간(오전 7~9시)에도 정체.부분정체 구간이 57%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특히 경부 축에 집중된 각종 개발사업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건교부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현재 계획.공사 중인 택지개발지구는 무려 89개나 된다. 80만 가구가 들어서는 규모다. 이 중 48%가 경부 축에 집중돼 있다. 송파 신도시가 완공되는 2013년 말까지 경부 축에만 41만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교통량의 엄청난 증가와 상습 정체는 불을 보듯 뻔하다. 건교부도 2004년 수립한 '수도권 광역교통 5개년 계획'에서 "현재 도로 여건이 유지된다면 소통 속도가 시속 40.9㎞에 불과한 수도권 도로가 2020년에는 30㎞ 정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에 대해 서울산업대 김시곤 교수는 "도로 추가 건설만으로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차로를 출퇴근 시간대로 확대하는 등 대중교통 강화책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자가용 운전자들을 흡수하기 위한 서울과 수도권 도시 간 광역 급행 전철 건설도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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