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52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며칠 전 ‘대선시민연대’가 한반도 대운하 공약 철회 운동에 나서더니 어제는 ‘2007국민연대(준비위)’가 반박 성명을 냈다. 선거 때만 되면 낯선 시민단체가 무수히 생겼다 사라진다. 이들의 선거판 전투는 정당 간 공방보다 훨씬 격렬하다. 미국에서는 이런 시민단체를 ‘527’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정치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다. 미국 국세법 527조에 규정해 놓은 면세 대상 시민단체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527’의 역할이 커진 이유는 선거자금이다. 개인이 정치인 개인에게 주는 하드머니(hard money)는 철저히 제한돼 있다. 기업이나 단체가 지지 정당에 주는 소프트머니(soft money)도 2002년부터 매케인·파인골드법으로 규제됐다. 그 출구가 ‘527’이다. ‘527’은 무제한으로 기금을 모금해 후보들에 대한 지지·반대 의사를 밝힐 수 있다. 정기적으로 국세청에 출납 내역만 신고하면 된다.

악역을 떠맡을 수도 있다. ‘527’은 선거관리위원회의 규제도 받지 않는다. 어떤 짓을 해도 후보에게 돌아가는 부담이 작다. 그래서 돈이 많이 들고, 상대 후보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광고는 ‘527’이 만든다. ‘527’은 특정 후보 캠프와 어떤 형태로도 협조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다. 대부분 과거 정당에서 일한 사람들이다. 대선 캠프에 있으면서 ‘527’에서 일하는 것이 밝혀져도 사임하면 그만이다(커윈 스윈트, 『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

한국도 결코 미국에 못지않다. 반독재투쟁의 역사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는 임원 세 명 중 한 명이 정부의 고위직 감투를 썼다고 한다. 현 ‘참여정부’에 참여한 것도 일반 시민이 아니라 소위 ‘시민단체’의 임원들이다. 새로운 등용문이다. 네거티브 선거전도 미국을 닮아간다. 우파 단체의 신문 광고와 좌파 단체의 인터넷 공세를 보면 금도(襟度)가 없다.

국민 경선은 이들의 입김을 더 거세게 만들었다. 국민의 이름으로 경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특정 후보의 재정 지원을 받아 말썽을 빚는 일까지 생긴다. 정당 조직이 부실한 탓이다. 한국의 정당은 대부분 정치인이 하향식으로 동원해 왔다. 돈이 막히면 동원이 어렵다. 관행에 젖은 당원은 대가가 없으면 투표도 하지 않는다. 투표율이 낮아질수록 비정당 조직의 정치활동을 막기는 더 어려워진다. 차라리 정치 참여단체와 비참여단체를 나누고, 그 규칙과 한계를 명확히 그어주는 게 순리가 아닐까.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