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눈에 비친 옛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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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어두컴컴한 방안,숯불이 이글거리는 화로 위에 찌개가 끓고 있다.냄비 뚜껑을 열고 죽은 개의 살 몇점을 베어내 찌개에 넣는다.이어 선반위의 작은 꾸러미에서 호랑이 눈썹과 황금빛 투구풍뎅이를 꺼내 조심스럽게 은젓갈로 집어 찌개에 넣는 다.긴 코,깊게 파인 주름,길게 튀어나온 누런 이빨 하나.화롯불위에 드러난 노파의 모습은 마치 무서운 一角獸 같았다.
구한말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펴던 미국인 눈에 비친 무당의 모습이다.무당이 마치 요즘 만화나 그림동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서양의 마귀할멈처럼 묘사되고 있다.
외국인 눈에 비친 옛 한국과 한국인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미국 선교사 베어드의 소설『어둠을 헤치고』,카르네프등 러시아 4인의 여행보고서『러시아첩보장교 대한제국에 오다』,프랑스 여류작가 모리오의 소설『운현궁』이 최근 잇따라 출간됐 다.「隱者의나라」에서 막 깨어나던 1백년전 구한말시절의 우리 풍물과 역사를 이방인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 책들이다.
구한말 남편과 함께 한국에 와 선교활동을 했던 베어드가 펴낸『어둠을 헤치고』(심현녀옮김.다산글방刊)는 1885년이후 조선에 파견된 외국선교사들이 매일매일 관찰한 사실들과 사건들을 편집,재구성한 실화소설이다.일찍 남편을 잃은 뒤 다 른 남자에게팔려가 종같이 지내던 한 여자가 기독교도가 돼 새 삶을 찾는다는 기둥줄거리와 함께 구한말의 풍속,특히 무속.풍수지리등을 그들 눈에 비친대로 묘사하고 있어 흥미롭다.
『러시아첩보장교 대한제국에 오다』(김정화옮김.가야미디어刊)는러시아 동방정책 수행의 일환으로 대한제국에 파견됐던 첩보장교와관리들이 쓴 보고서형식의 여행기.
『한국인은 온순하고 선량하며 순종적이다.세상에 고립된채로 살아온 그들은 지금까지 더 나은 삶,더 나은 상황,더 나은 질서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기술하고 있다.
『운현궁』(유정희옮김.가리온刊)은 明成皇后의 삶과 죽음을 다룬 소설이다.82년부터 5년간 서울대 교수등으로 한국에서 지냈던 모리오가 93년 프랑스 프롱출판사에서 펴낸 이 작품은『프랑스에 거의 알려지지않은 한국 왕가 이야기를 아름다 운 필치로 그리고 있다』는 평과 함께 현지 독서계의 큰 호응을 불렀다.
1백년전 외국선교사나 첩보원들이 묘사한 우리 선조들의 모습은오늘 우리들이 지구 오지 원주민들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는 것과 흡사하다.『모든 것이 새로운 수백 군중 앞에서 나는 양복의안까지 보여주고 옷까지 벗는 수난을 당했다』는 러시아첩보원의 기술처럼 바깥세계에 처음 부닥친 우리 선조들은 코카콜라 병을 신기한듯 바라보는 부시맨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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