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 너무앞서 졸속건의… 무산/교개위 「본고사 폐지」파문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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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성적순 교육 바로잡자” 방향은 긍정적/대학 자율화 전체흐름과는 달라 논란
교육개혁위가 13일 발표한 「대학입시제도 긴급대책안」은 획일로 치달아온 대입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내용을 담고있어 자못 충격적이다.
모든 학생의 평가를 「성적순」으로만 해온 종래의 제도를 기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으로,특히 장기적으로는 공부일변도의 학교생활을 어느정도 정상화시킬 수도 있으리란 긍정적인 가능성을 엿보이게 한다.
그러나 입시를 불과 5개월 남겨둔 수험생들이 겪게될 엄청난 혼란이 고려안된 채 빠르면 내년도 입시부터 시행되도록 건의하겠다는 시기선택은 곧바로 청와대에 의해 문제로 지적됐다.
이미 4월말 대학별 입시기본계획이 공표돼 모든 수험생들이 그에 따라 대입준비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대입 기본틀을 뒤흔드는 대책안이 가져올 엄청난 혼란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본고사 폐지안=대학의 학생선발권을 거의 완전자율화한다는 대책안의 전체적인 흐름과 정면으로 모순을 범하고 있는 본고사 폐지안은 이번 대책안의 탄생이 본고사 시행반대 의견을 지나치게 의식한 졸속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도 한다.
국·영·수 위주의 과열과외와 학교수업 파행으로 인한 부작용들이 빚어지고 있는건 사실이지만 본고사에 대해 대학측이 갖고 있는 인식과 운영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본고사 자체가 부작용의 발원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부측은 『본고사를 다양한 소재를 이용한 논술 또는 전공계열에 맞는 비도구 과목 등으로 치를 경우 오히려 학교교육의 정상화와 학생들의 깊이있는 학습·사고력 등을 키울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96학년도부터의 본고사 폐지 가능성도 현재로선 반반정도가 되리란 전망이다.
본고사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선 이의 선택적 채택을 규정한 교육법시행령(71조 2항)을 고쳐야 하며 대통령령인 관계로 국무회의의 의결로 통과된다.
교개위측은 건의에서 수능시험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문항수를 2백개에서 4백개로 늘리고 난이도를 조절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전형요소 다양화=현재의 성적위주 교육이 소위 전인교육과 동떨어진 비생산적 방식이란 점에서 교육부도 장기과제로 검토중인 사안.
연세대가 얼마전 건의했던 농어촌지역 학생 특례입학이라든가 외부의 추천입학제,전국대회 수상경력자나 분야별 우수생 등 학교측이 자율적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개위는 그러나 국민정서에 맞지않는 기여입학제는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교개위는 그러나 국민정서에 맞지않는 기여입학제는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이 역시 특례입학 범위 산정과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한 오랜 연구가 필요하며 교육법시행령의 개정을 요해 빨라야 96학년도부터 시행이 가능하다.
◇복수지원 활성화=우수한 학생들이 경쟁률이 심한 학과에 응시했다 재수를 하게되는 모순을 막기위해 능력만 갖추면 그에 맞는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처럼 특정한 입시기간없이 1년내내 분할모집을 한다거나 단과대별로 입시일을 달리하는 방법,모든 학생이 여러 대학을 지원한 뒤 중앙관리기구가 컴퓨터를 이용해 배정하는 방법 등이 건의됐다.
교개위는 김영삼대통령의 대선당시 공약사항을 제시됐던 교육개혁의 추진을 위해 지난 2월4일 대통령직속 자문기관으로 발족해 각계중진 25인으로 구성돼 있으며 5개 소위원회별로 10명 내외의 전문위원을 두고 있다.
교개위는 지난해 8월 대통령령으로 『21세기에 대비한 교육의 기본방향을 정립하고 국민적 합의도출과 범정부적·사회적 교육개혁의 추진 등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산하에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각부처 1급이상 인사로 실무협력위를 두고 교육부차관·청와대 교문비서관 등 3명을 간사로 하고 있다.<김석현기자>
◎건의∼유보 해프닝의 시말/반대 알면서 발표 강행/폭탄선언에 세론은 벌집/청와대서 7시간뒤 진화
폐지 13년만인 올해 부활된 대입 본고사제도가 실시한해도 못넘기고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의 「전격적인 폐지」 발표에 이어 일곱시간만에 대통령의 수용거부로 발표내용 자체가 「전격 유보」도는 등 갈팡질팡 한 전말은 어떤 것인가.
중앙대 총장출신의 이석희위원장과 이명현 상임위원(서울대 교수),최충옥 전문위원(경기대 교수)을 중심으로 김태윤부위원장(서강대 교육대학원장),김신일·이돈희 서울대 교수,이강혁 전 외대 총장,정진위 연세대 부총장 등 2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과 10명의 전문위원 등은 2월5일 교육개혁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만연된 과외병폐와 수험생들의 과중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입시제도 개선을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로 지목,4개월간 은밀하고 지속적인 검토를 계속해 왔다고 밝혔다.
이런 과정에서 본고사 폐지에 대해 전체위원들간에 의견이 모아져 지난 3∼5일 경기도 양평 남한강수련원에서 열린 합숙토론회에서 『실시는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는 결론에 도달,95년부터 전격 폐지한다는 교개위 개선안이 사실상 굳어졌다.
이어 11일 교개위원회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95년 시행안」과 「96년 시행안」이 상정돼 교육부측의 조기실시 반대입장 표명으로 다섯시간의 격론을 벌인뒤 표결에 부쳐져 대다수의 찬성으로 95년 시행안이 확정됐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송태호 청와대교육비서관은 『전체회의에 간사자격으로 참석했던 이천수 교육부차관 등 교육부측에서 충격과 혼란이 예상되고 실무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들어 95년 실시에 반대했으나 개혁차원에서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했다』고 전했다. 결국 현실론이 개혁의 걸림돌이라는 이유로 발붙일 곳이 없었고 목소리 큰 개혁론이 논의의 여지를 없앤 것이다.
교개위측은 청와대 교문사회비서실의 양해하에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13일 오전 11시 본고사 폐지 긴급건의안을 발표했다.
김영삼대통령은 오후 5시쯤 김정남 교문수석의 보고를 듣고 즉시 『95학년도 입시는 현행제도 아래서 실시하고 96학년도 입시의 제도개선도 대학자율존중 등 3개항의 기본원칙을 지키라』고 지시,오후 6시 주돈식 청와대대변인이 사실상 교개위의 개선안을 채택거부하는 청와대의 입장을 발표하게 됐다.<이기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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