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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활새풍속>12.祭祀음식까지 주문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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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사먹는 김치가 아주 맛있던데….구차하게 처가.본가로 김치얻으러 다니지 않아서 좋고,값도 한포기 3천원정도면 적당하더군.』 김치없이는 밥을 못먹는 전통적 한국남성임을 표방하는 崔仁圭씨(34.C상사대리)는 최근 맞벌이 아내와의 오랜 숙제였던 김치문제에서 대타협을 이뤄냈다.
崔씨는 다른 반찬은 사먹어도 김치만은 집에서 담가먹어야 한다고 주장해 아내는 늘 친정.시집을 오가며 김치를 얻어왔다.그러다 최근 아내가 얻어먹는 어려움을 호소하는데다 동네 반찬가게에서 파는 김치맛이 좋아 사먹는 쪽으로 급선회한 것 이다.그리고는 회사동료들에게도「얻어먹지 않는 편리함과 떳떳함」을 들어 김치사먹기를 오히려 장려한다.
金恩姬씨(31.서울목동)는 남편이 밤늦게 술손님을 끌고와도 두렵지 않다.전화 한 통화면 그럴듯한 회 한접시.채소.초고추장.와사비간장에다 젓가락.냅킨까지 갖다주기 때문이다.3만원정도면두세명의 손님을 감동받도록 접대하고도 술잔 몇개 만 씻으면 손에 물묻힐 필요없고,밖에서 비싼 술마실 돈 절약돼 여러모로 좋다는 것.
「김치.도시락반찬부터 제사음식까지」주부가 이제는 음식준비를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거리가 먼 백화점이나 시장까지 가지 않아도 집근처 반찬가게에 가면 멸치볶음.장아찌등 밑반찬부터 부침개.편육.생선구이등 집에서 해먹는 음식은 뭐든지 구할 수 있다.현재 체인점을 둔 반찬업체는 10여개정도 되고,동네마다 소규모로 하는 반찬점은 집계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한달전부터 송파.문정동에서 맞벌이주부와 직장인을 타깃으로 가정식 백반 체인점을 시작한「찬누리」는 요즘 대상을 주부와 일반가정으로 수정했다.오피스가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운동을 끝내고 오는 주부가 이른 점심을 먹는다든가,아이들 도시락반찬을사러오거나 휴일이면 김밥등 도시락을 사가는등 주부들이 주고객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외식산업규모는 15조원.도시근로자 가구당 식비에서 외식비의 비율이 92년 24.9%로 10년전인 83년 7.2%에비해 세배이상 높아졌다.
서울 전곡국민학교 金昌福교사는 얼마전 봄소풍때 어린이들 도시락이 양념통닭에 맨밥이나 사온 김밥이 주종인 것을 보고 씁쓸했다고 말한다.
『평소 학교급식으로 도시락을 싸지 않은 엄마들이 이날만은 손수 김밥을 싸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역시 아니더군요.』 매일새벽학생도시락을 배달하는「그린엠」은 지난해 4월 개포동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현재는 35개 대리점으로 서울 전지역과 수도권 일부지역까지 판매망을 확대했다.회원수는 3천여명정도.소풍갈때는 김밥도시락 주문이 두배이상 늘어난다.
요즘 요리솜씨가 없어도 물끓이는 재주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것은 라면만이 아니다.끓는물에 풀기만 하면 되는 된장국.사골우거지국.미역국등 인스턴트 전통국도 많고,봉투째 데워먹는 자장.
카레.단팥죽.호박죽까지 있다.
한국가족문화학회(회장 李東瑗)는 이달부터 국민학교 어린이들의음식섭취실태를 조사하기로 했다.외식.매식문화의 확산으로 어린이들의 식생활문화가 심하게 왜곡돼 있어 실태진단을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처음 나라를 세웠을 때 여러 문화권에서 살다온 민족의 정서적 통일을 위해 가장 먼저한 것이 민족음식을 만들어보급한 것이었습니다.』 李東瑗교수(이화여대사회학과)는 음식은 신체성장뿐 아니라 정서적 영향력이 매우 크므로 간편한 외식이 부모.자녀관계의 단절과 가정상실이라는 병폐를 낳을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남편을 내사람으로 만들려면 시어머니의 손맛을 배워라」.이 경구가「남편을 내사람으로 만들려면 남편이 먹고자란 반찬가게를 알아두라」로 곧 바뀔지도 모른다.
〈梁善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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