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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모세도 ‘로또’를 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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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여러 종류의 주사위가 나왔고 다른 문명발상지들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도박은 줄기차게 역사와 함께해왔다. 이집트에는 달력 신이자 도박 신 타후티(Djehuty/Thoth)가 있고, 사하라에도 도박이 있어 사막을 횡단해 여러 부족에게 전파되었다. ‘리그 베다’에 ‘주사위 열매는 나를 거의 미치게 한다’는 노래로 남아 고대 인도에서 주사위를 던지던 노름꾼의 절박함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열매란 주사위로 삼았던 나무 열매나 양 복사뼈 따위를 이른다. 상아·나무·쇠·플라스틱이 그 뒤를 잇는다.

고대 중국 상나라에도 벌써 도박이 있었다. 주나라에는 저자에 도박하는 집이 따로 있었다. 서양보다 500년 이상 앞선 로또의 동양적 원형이라 할 만한 36마리 동물 카드를 이용한 숫자 도박이 일찍부터 중국 대륙에 있었다. 흉노와 연관이 있는 훈족에게는 ‘아내를 도박에 거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게르만족은 돈이 다 떨어진 막판에는 몸을 걸고 도박을 하다 지면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 하기야 제우스, 하디스, 포세이돈 세 신이 세상을 천국, 지옥, 바다로 나눌 때 주사위를 던지고 있다. 천지창조가 도박이라니. ‘민수기’ 26장 51~56절에 보면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그 다소를 물론하고 그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Each inheritance must be assigned by lot among the largest and smaller trial groups)’는 구절이 나온다. 모세가 ‘by lot’라 한 것은 도박이라기보다 땅을 나누는 데 신의 뜻에 따랐다고 보면 되겠다.

조선시대도 도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현명한 군주였던 세종 임금은 동전을 생산하면서 노름에 이용되지 않을까 지레 걱정을 했는데 역시 안목이 높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박당 무리가 출현해 도적질까지 하고 있는 건 중종 연간이다. 송파장에서 벌인 산대놀음에 투전으로 운명을 점치는 대목은 당대 도박사회학을 형상언어로 전승하고 있다. 이는 ‘상평통보’의 대중적 유통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천주학쟁이로 몰려 억울하게 죽은 강세황의 손자 강이천이 남긴 ‘한경사’ 106수는 당시 노름판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다. 연암 박지원은 문장이 막히면 홀로 쌍륙을 쳤다고 전한다. 왼손 오른손을 다른 편으로 삼아 혼자서 대국을 즐겼다니 도박 중증이라고 봐야 한다.

‘경자년 봄에 촉석루에서 떠들썩하게 악기를 연주하다 해가 저물어서야 파하였습니다. 심 비장과 함께 저포 노름을 하여 삼천 전을 가지고 여러 기생들에게 뿌려주며 즐겁게 놀았던 일을 기억하십니까’라고 편지를 쓰고 있는 이는 다산 정약용이다. 이윽고 그는 『목민심서』에서 도박의 폐해를 통렬하게 꾸짖는다. 화폐 유동성이 없던 때이고 보면 노름이 실물금융경제에서 한 구실을 한 대목이 있을 법하다.

유럽으로 건너가 보면 노름이 국가 사업의 근간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복권의 국가 전매는 1759년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동시에 다른 복권들은 불법이 되었고 복권기금은 국가 부채를 갚는 데 사용되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영국 웨스트민스터 다리(1739), 대영박물관(1753)을 세우는 재정의 상당부분이 복권에서 나왔다.

미국도 나라의 힘을 키우는 데 복권을 적극 활용했다. 독립영웅 벤저민 프랭클린은 독립전쟁에 필요한 대포를 복권으로 찍어냈다. 조지 워싱턴은 로키산맥 너머로 ‘서부개척시대’를 여는 데 복권에서 돈과 힘을 얻어 썼다. ‘프런티어’의 심장은 복권에서 먼저 뛰고 있었던 것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이 발행한 개인 복권으로 개인 빚 8만 달러를 갚고 있다. 복권을 사는 사람은 대개 가난한 사람들이다. 교도소에 들어가는 사람 또한 엇비슷하다. 그들에게서 얻은 돈으로 그들을 가두고 있는 꼴이다.

최초로 대중도박장이 베네치아에 합법적으로 개장한 것은 1826년이었다. 상류층들은 여기서 노름과 더불어 다른 욕망도 아울러 해결했다. 노름, 성매매, 술은 일찍부터 삼형제였다.

종이값, 인쇄비, 관리비 말고는 달리 들어갈 게 없는 게 복권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복권 로또 따위를 ‘굴뚝 없는 산업’을 넘어 ‘저항 없는 세금’ ‘고통 없는 세금’ ‘마비된 세금’ ‘표시 없는 착취’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북한도 90년대 초 ‘추첨제저금’, 곧 변형된 복권을 발행하고 있다.

소설가 서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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