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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취재] ‘금값’ 韓牛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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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한우 한 마리에 600만 원. 미국산 육우는 약 100만 원. 무려 여섯 배 차이다.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재개되면서 한우 거품논쟁이 일었다. 그 속내를 뜯어보았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싸다 보니 손이 가게 되더라고요. 한우 값이 워낙 금값이어서 한 번 사먹고 싶어도 쉬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집에서 찜을 해먹었는데, 맛도 매우 좋았어요.” 지난 7월13일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재개된 뒤 대형 할인점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구매했다는 주부 신영숙(59) 씨의 말이다. 2003년 광우병 파동으로 수입 금지된 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3년7개월 만에 재개된 날 판매대에서는 여러 진풍경이 벌어졌다. 롯데마트는 공급 물량이 달릴 것을 우려해 1인당 판매량을 1kg으로 제한했음에도 6시간 만에 준비한 2t 분량이 모두 동나고 말았다. 이는 평소 같은 매장에서 팔려나간 수입육 매출의 4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농민단체의 실력 저지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미국산 쇠고기 값이 한우의 절반밖에 안 되는데다 맛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붐을 이루자 비싼 한우 값에 대한 불만도 커졌다. 한우는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1 유통비용 너무 크다 · 소비자가격의 40.2%… 소매 단계 유통비용 33.5%로 대부분 차지 · 높은 매장 임대료·인건비 부담… 한우 한 마리 유통비만 300만 원 육박 2 마리 단위 거래 관행도 걸림돌 · 인기·비인기 부위 가격차 현저… 많이 찾는 부위 가격으로 따라가 · 음식점에 내다 파는 길 없으면 비인기 부위는 다 버려야 할 판 3 결정적인 요인은 ‘산지 소 값’ · 한우 한 마리 600만 원, 미국산은 100만 원 내외… 무려 6배 차이 · 최근 출하되는 한우는? 송아지 값 300만 원, 사료비 250만 원이 원가 · 옥수수·건초 등 수입 사료값 급등도 한몫… 맛·품질 위한 투자도 부담 ‘국산 쇠고기 소비자가격의 40% 가량이 유통비용.’ 농수산물유통공사가 낸 지난해 말 국내 쇠고기 유통 실태 보고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산 쇠고기 유통비용은 소비자가격의 40.2%. 이 가운데 소매 단계의 유통비용이 33.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농림부 의뢰로 소비자시민모임(이하 소시모)이 지난해 11월30일까지 조사한 결과도 나왔다. 같은 한우라도 지역과 장소에 따라 소비자가격이 최고 2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계기로 국산 쇠고기 유통의 거품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소 한 마리에 600만~700만 원이나 하는데, 너무 비싼 것 아닌가요? 혹시 유통과정에 거품이 있는 것 아닙니까?” 서울농협축산물공판장 김욱 실장은 이러한 직설적 물음에 “단지 유통비용 때문에 한우가 비싼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형 할인점이든, 일반 정육점이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우 유통비용, 소비자가 40% 수준 대형 할인점인 롯데마트의 경우 한우를 축산물처리장과 생산자단체로부터 공급받는다. 축산물처리장은 소를 농장에서 직매하거나 공판장에서 경매해 도축한 뒤 부위별로 나눠 판매하는 곳. 생산자단체는 유명 쇠고기 브랜드로 잘 알려진 횡성한우·대관령한우·지리산순한한우 등 지역 브랜드를 내걸고 품질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한우업체를 말한다. 롯데마트는 이들 한우 브랜드 가운데 지리산순한한우와 공급 계약을 하고 쇠고기를 직접 납품받고 있다. 롯데 측은 순한한우브랜드사업단에 사육과 관련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면서 원하는 품질의 쇠고기를 확보한다. 이때 롯데는 품질을 인정하는 비용을 추가로 제공해 생산자단체의 납품가는 서울 가락동의 축산물공판장 평균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전국 평균 시세보다 높은 편이다. 매장에서는 생산자단체와 축산물처리장에서 들어온 쇠고기의 포장을 풀고 지방을 제거하는 등 손질을 거쳐 소비자가 원하는 소단위로 재포장해 판매한다. 또 다른 대형 할인점 이마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마트는 현재 농협중앙회와 계약을 하고 1등급 이상의 쇠고기를 납품받는다. 납품 가격은 전국 평균 시세를 기준으로 한다. 최상 등급의 경우에는 마리당 20만 원 정도의 ‘한우 자조금’을 농가 쪽에 추가 지급한다. 일반 정육점의 쇠고기 유통은 대형 할인점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다. 서울 염리동의 H정육점은 평소 서울농협축산물 공판장 중개인을 통해 한우를 납품받는다. 중개인은 공판장에서 경매를 통해 소를 사들인 뒤 이를 다시 정육점에 되판다. 이때 거래 단위는 마리가 보통이다. 정육점에서 소 한 마리를 통째로 들여와 전문업자를 시켜 뼈를 발라내고 부위별로 손질한 뒤 소비자에게 파는 것이다.

▶ 지난 7월13일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3년여 만에 재개됐다. 롯데마트 육류 매장에 마련된 미국산 쇠고기 코너에 고객들이 몰리면서 품절 사태를 빚었다.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이 과정에서 마리당 평균 300만 원 안팎의 유통비용이 발생한다. 도축이나 운송, 그리고 중개에 드는 비용은 50만 원 이내. 나머지는 소매 단계에서 발생한다. 그렇다고 소매업자들이 폭리를 취한다고 속단하기도 어렵다. 서울 창동에서 횡성한우 직매장을 운영하는 민모 씨는 “산지 직매장을 운영해도 파격적으로 싼 가격에 고기를 팔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매장 임대료뿐 아니라 인건비·홍보비 등 기본적인 운영비용이 최종 소비자가에 포함된다. 그러니 점포 임대비가 비싼 지역일수록 쇠고기 값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유통비용이 뛰는 이유는 몇 가지 더 있다. 업자들은 국내 쇠고기 유통이 보통 마리 단위로 거래되는 점을 문제로 꼽는다. 650kg 기준의 소 한 마리에서 살코기는 60% 가량. 그 나머지를 뼈나 사골·우족·내장 등 부산물이 차지한다. 쇠고기 21개 부위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등심은 살코기의 10% 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인기 있는 부위와 비인기 부위 간에 가격차가 크고, 인기 없는 부위는 처치 곤란인 경우도 있다. 결국 소비자들의 수요가 많은 특정 부위는 가격이 뛸 수밖에 없는 구조다. H정육점 주인 이모 씨는 “우리는 음식점과 거래하기 때문에 안 팔리는 부위 없이 고루 팔려 나가지만, 음식점과 계약 없이는 정육점을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축산물등급판정소에서는 부분육 단위의 판매를 권장한다. 서울 등급판정소의 오시창 과장은 “(부분육 단위 거래가) 아직 활성화하지 않았지만 세계적 추세이므로 점차 그쪽으로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들여오는 쇠고기의 경우 필요한 부위만 주문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오 과장은 부분육 단위 거래가 활성화하면 어느 쪽으로든 유통비용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농수산물 전체의 유통비용과 비교해 볼 때 한우의 유통비용이 특별히 높은 편은 아니다. 2006년 농수산물유통공사의 농수산물 유통 실태 보고서를 살펴보면 26개 품목 가운데 쇠고기의 유통비 비중은 최하위권이었다. 축산물 중에서도 닭고기의 경우 유통비용이 54.1%를 차지해 쇠고기의 40.2%보다 10% 이상 높았고, 돼지고기는 40.1%로 쇠고기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미국의 쇠고기 유통비용과 비교해 봐도 한우의 유통비용이 턱없이 높은 것은 아니다. 미국육류수출공사가 밝히는 2007년 2분기 미국의 쇠고기 평균 유통비용은 870달러. 비용은 턱없이 낮지만 유통비 비중은 최종 소비자가의 44.3%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난다. 절대적 비용은 한국보다 적지만, 비율로 따지면 한국보다 오히려 높은 셈이다. 마리 단위 거래, 선호 부위 가격 추동 롯데마트 정선용 MD(머천다이저)는 “한우나 외국산 쇠고기나 납품가격과 최종 소비자가격 간 유통 과정에서 생기는 가격차는 비슷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생산지 소 값이다. 지난해 12월 한우의 생산지 평균가격은 567만 원 수준. 이에 비해 미국소의 생산지 평균가격은 1,092달러(약 100만 원: 미국육류수출협회 통계)에 그쳤다.<오른쪽 도표 참조> 아예 비교조차 안 되는 가격이다.

이렇게 불균등한 가격차가 축산농가들로 하여금 쇠고기시장 개방 저지 목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이러한 가격차이는 ‘규모의 경제’에서 비롯된다. 미국에서 사육되는 소는 우리나라의 40배 정도다. 호주도 14배 정도나 된다. 축산농가당 사육하는 소의 마릿수도 차이가 크다. 우리나라는 농가당 10.9마리. 미국 농가의 42마리에 비해 불과 4분의 1 수준이다. 전국한우협회 조혜인 대리는 “그나마 국내 축산농가는 한두 마리씩 소를 기르는 영세농가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20마리 이상 소를 키우는 농가는 전체의 12.5%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땅덩이, 목장, 축산농가의 규모로부터 가격차이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한우 값이 비싸지는 데는 높은 사료값도 한몫을 담당한다. 사료의 주원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탓이다. 30여 년 전만 해도 볏짚과 콩깍지 등 여물이 한우의 주식이었지만, 최근에는 95% 정도를 수입 원료가 차지하는 사료뿐만 아니라 건초마저 외국산이 대부분이다. 한우 사료의 주원료인 옥수수 값 폭등도 큰 부담이 됐다. 미국·중국·브라질 등 주요 옥수수 생산국이 청정 에탄올 연료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옥수수 값이 최근 2배나 뛰었다.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한우시험장 조영무 박사는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사료의 원료 가격이 오르고, 물량은 줄어들어 소의 생산비용이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우의 품질 향상을 위한 투자도 생산가격을 높였다. 쇠고기는 보통 암소의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림부와 농협에서는 암소와 같은 부드러운 육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소의 거세를 권장한다. 1993년 한우 수소의 거세율이 0.3%에 그쳤던 것이 지난해는 40% 이상으로 늘어났다. 축산물등급판정소의 등급판정 통계를 보면 거세우의 육질이 비(非)거세우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등급 판정을 받은 한우 가운데 거세하지 않은 수소는 1등급 이상이 전체의 3%에 지나지 않았지만, 거세 수소는 70% 이상이 1등급 이상을 받았다. 그런데도 거세율이 절반에 못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세할 경우 생산기간이 길어지는 탓이다. 비거세우의 경우 18~20개월 만에 출하가 가능하지만, 거세우는 24개월은 족히 길러야 출하가 가능하다. 생산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생산단가는 올라가게 마련이다. 때문에 거세하지 않는 대신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는 사례도 찾을 수 있다. 전북 정읍의 ‘산외마을’과 강원도 ‘다하누촌’이 대표적인 경우다. ‘반값 한우’를 간판으로 내건 산외마을 번영회장 김용복 씨는 “거세하지 않은 수소는 금방 자라 순환이 빠르다”며 저렴한 한우 가격의 비결을 소개했다. 산외마을의 한우가 가격은 싸지만 질기다는 평을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가 산지 소 값 좌우 최근 ‘한우 등심 300g에 8,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한우 가격 거품 제거를 선언한 강원도 영월군 섶다리마을의 다하누촌도 산외마을처럼 비거세우를 길러 판매하고 있다. 한우의 맛에 따른 가격 차등화 측면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쇠고기 육질 등급은 1++, 1+, 1, 2, 3등급으로 구분된다. 등급 외에도 한우·육우·젖소 등 소의 종류에 따라 가격 차이가 존재한다. 육우에는 한우가 아닌 육용종과 젖소 가운데 수소와 처녀 암소 등이 포함된다. “같은 2등급이라도 한우는 먹지만, 육우는 손이 잘 안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서울 축산물등급판정소 오시창 과장의 설명이다. 소의 종류에 따라 가치가 천차만별이라는 말이다. 축산물등급판정소의 자료를 보면 같은 등급이라도 육우와 한우 사이에는 마리당 40만~50만 원 정도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 과장은 “국내에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는 ‘초이스’ 급으로, 미국의 8개 쇠고기 등급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지만, 국내 기준으로 보면 ‘육우 2등급’ 정도의 수준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그래서 미국산 쇠고기 가격을 한우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외국산 쇠고기를 우리나라의 쇠고기 등급과 거래 가격에 적용한다면 한우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거래될 것이라는 말이다. 미국 육류 수출업체의 홍보담당 최정은 대리는 이와 관련해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한우보다 (미국산 쇠고기가) 더 맛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차이는 한국인의 독특한 입맛에서 비롯된다. 미트비즈니스컨설팅센터의 이위형 소장은 “한국인들은 자극적이고 강한 맛을 좋아하는데, 한우의 질감이 그 입맛에 딱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 충남 서산시 운산면 원벌리 농협 가축개량사업소에서 봄을 맞아 우량 암컷 한우들이 축사를 벗어나 방목지로 향하고 있다.

국내 쇠고기 시장의 공급량이 그 동안 계속 줄어든 것도 한우 값을 끌어올린 데 일조했다. 지난 3년7개월간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금지되면서 국내 쇠고기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한우뿐 아니라 호주산 쇠고기 값 상승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1997년 국내 사육 두수가 293만 두로 최고로 올라갔을 때 IMF 외환위기가 터졌어요. 그 뒤 경기가 회복된 2003년까지 국내 농가의 소 사육 두수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농협중앙회 축산물유통부 김성호 차장은 “2003년 12월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되면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 계속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암소들이 감소하면서 송아지 값도 폭등했다. 직전까지 200만원 정도에 거래되던 송아지가 100만 원 가량 훌쩍 오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올해 판매되는 한우는 당시 300만 원에 거래되던 송아지가 자란 것이다. 농촌진흥청 한우시험장 조영무 박사는 “당시 송아지 가격이 300만 원이나 됐고, 30개월간 사료비가 250만 원 정도 소요돼 현재 판매되는 한우 값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조 박사는 또 “최근 한우가 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돼 시장은 3년 전과는 대조적 상황”이라며 “송아지 가격이 많이 내려 한우 값은 향후 하향안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입 쇠고기 맛, 국내 육우 2등급 수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전후해 한우 농가들의 쇠고기 시장 개방에 대한 대응도 눈에 띈다. 한우업계는 우선 유통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거래 판매를 꾸준히 늘려 왔다. 지난 4월부터는 인터넷 쇼핑몰 G마켓과 옥션에 정육 코너를 개설해 직거래를 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한우 판매는 산지에서 직접 배송하기 때문에 중간 유통 마진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온라인 직거래는 한우 브랜드들의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이미 이뤄지고 있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횡성한우·대관령한우·안성맞춤한우 등 20여 브랜드가 이에 해당한다. 최근 눈에 띄게 증가한 ‘정육점식당’도 소매 비용을 줄인 사례로 꼽을 만하다. 정육점에서 먹고 싶은 한우를 사 정육점에 딸린 식당에서 바로 시식할 수 있게 한 경우다. 김해축협의 천하일품한우는 축협 하나로마트에서 한우를 사면 2층의 식당에서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다. 한우를 싼값에 구입할 수 있는데다 즉석에서 먹을 수 있어 인기다. 지난 4월 론칭해 현재 9호점까지 체인점을 늘린 농협 ‘목우촌’의 ‘웰빙마을’도 주목받는다. 등심 1인분에 1만2,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1+ 등급 한우를 제공하는 정육점식당이다. 목우촌 최태양 체인사업단장은 “농협을 통해 최소한의 취급수수료를 받고 매장 마진을 10% 넘게 줄여 가격을 끌어내릴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일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부위를 대량 확보하기 위해 군대나 학교와 거래선을 늘린 것도 가격 인하에 도움이 됐다. 웰빙마을은 이러한 기세로 올해 말까지 체인점을 5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생산 단가를 낮춰 한우 대중화를 꾀하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정읍의 산외마을이 대표적인 경우다. 산외마을은 장조림·불고기용 한우 600g을 1만1,000원에 판매하고, 로스용은 600g에 1만5,000원으로, 양념값 6,000원만 보태면 정육점 옆 식당에서 곧바로 시식할 수 있도록 했다. 고급화를 포기하는 대신 2등급 한우로 대중화를 선택한 것이다.

유통 마진 줄이기 위한 온라인 직거래 증가 산외마을 김용복 번영회장은 “소비자들이 한우를 싸게 판다는 사실을 믿지 않아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지난 2년 동안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한우가 아니면 100배를 배상하겠다’는 광고를 했고, 150개가 넘는 상가들로부터도 한우만 판매한다는 각서를 모두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보아 올해는 하루 매출 3억 원, 한 달 매출 80억 원이라는 경이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한우의 대중화와 함께 고급화·차별화하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축산산업 과학화도 그 가운데 하나다. 현재 전국의 축협과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농가가 요청하면 초음파를 통한 육질 검사와 사육 컨설팅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3,000만~4,000만 원 정도 하는 초음파 기계와 컨설팅 인력은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제공한다.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도 마찬가지다. 서울등급판정소 오시창 과장은 “우리나라의 등급 판정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한우를 외국의 등급기준에 적용하면 더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며 “세계시장에서도 한우가 육질로 평가받을 만큼 경쟁력을 쌓았다”고 설명했다. 한우 고급화를 위한 노력이 결실을 보려면 선결 과제도 있다. 바로 신뢰 회복이다. “판매점에서 한우라고 해도 소비자는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비싼 돈 내고 속느니 차라리 싼 외국산 쇠고기를 사먹자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에요.” 주부 홍은상(51) 씨의 고백이다. 실제로 그 동안 유통 과정에서 쇠고기의 산지와 품종, 육질을 속여 판매한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전국의 300㎡ 이상 대형 음식점 620곳을 대상으로 한 원산지 단속에서도 87개의 업소가 적발돼 소비자의 불신을 키웠다.

▶ 지난 7월6일 서울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한우 및 수입 쇠고기 시식회’에서 고객들이 한우와 미국산 쇠고기 맛을 비교해 보고 있다.

한우 유통 과정의 불투명성 벗어나야 이와 관련해 농림부 이학수 서기관은 “‘쇠고기이력추적시스템’이 원산지와 품종을 속여 파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쇠고기이력추적시스템은 원래 광우병·구제역 같은 질병의 전염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한우의 품질 관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소가 태어날 때부터 도축·유통·판매까지의 정보를 고유 번호를 통해 관리한다는 것이다. 이 서기관은 “이 시스템이 내년 하반기부터는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서 향후 한우의 경쟁력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음식문화연구소 정양국 소장은 “우리 음식은 양념을 많이 해 육질에 따라 맛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워 한우시장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우시험장 조영무 박사는 반대 입장이다. 그는 “한우는 여타 쇠고기와 육질로나 안정성으로나 경쟁할 수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한우시장은 굳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트비즈니스컨설팅센터의 이위형 소장은 다소 유보적 입장이다. “쇠고기시장은 쉽게 변화하는게 아니어서 미국산이 들어와도 1~2년은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남은 시간 동안 국내 농가들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소비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겠지요.” 국민의 밥상에 한우가 올라가기 위해서는 ‘고급화’와 ‘대중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

인터뷰 ㅣ 농촌진흥청 한우시험장 조영무 박사

“한우 경쟁력 2~3년 안에 일본 ‘와규’ 따라잡는다”

5월이 제철이라는 대관령의 초지는 8월에도 충분히 아름답다. 국내 3대 한우 목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대관령목장 언덕 위에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한우시험장이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 펼쳐진 약 600㏊의 초지 위에는 한우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풀을 뜯고 있다. 맛 좋고, 양이 많고, 작은 생산원가를 통한 한우 생산을 목표로 설립된 한우시험장의 꿈도 그 위에서 싹을 틔웠다. 지난 25년 동안 축산업에 종사해온 조영무 박사의 열정에서도 우리 축산업의 밝은 미래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한우의 맛자랑으로 대화는 시작됐다. “우리 한우에는 올레인산과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어요. 올레인산은 쇠고기의 풍미를 느끼게 하는 성분으로, 한우는 광우병 문제로부터도 자유롭고 항생제도 사용하지 않아 안전성에서 가장 믿을 만한 쇠고기라고 자신합니다.” 조 박사는 “수입산 쇠고기와 한우를 같은 불판에 구워 먹어 보면 한우 맛의 우위를 뚜렷이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우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한 지난 노력들도 설명해 주었다. 1990년 당시 우르과이라운드(UR)와 세계무역기구(WTO)·자유무역협정(FTA) 등 밀려오는 국제적 개방 정세에 대비해 한우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고급육 연구를 계속해 왔다. 고급육 연구와 농가 개발을 해온 지 올해로 17년째. 이제 한우의 71% 정도가 고급육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성과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육인 일본의 ‘와규(和牛)’는 고급육 생산율이 80%인데, 2~3년 내에 그 목표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축산물브랜드대회에서 4년째 심사를 맡고 있는 조씨는 “고급육 개발을 위한 노력과 함께 한우 브랜드가 성장해 왔다”고 설명한다. 현재 국내에 상표등록된 브랜드는 총 250개 정도. 그는 “최근에는 대형 유통업체에서 입상 실적과 인증 여부, 안전성 등을 요구해 브랜드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고 말했다. 브랜드 간 치열한 경쟁이 좋은 품질의 한우를 만드는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한우의 높은 가격에 대해 조 박사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한우 가격이 지속적으로 올라 생산지 가격이 높은 것이 사실”이라며 “송아지 가격이 많이 안정된 만큼 장차 생산지 가격이 내리는 것이 농가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품질 고급화와 별도로 비거세우를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새로운 흐름에 대해서도 그는 “다양한 계층과 시장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비거세우, 2등급이라는 사정은 밝히지 않고 무조건 ‘한우 가격을 이렇게 낮은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홍보하는 것이 한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 박사는 한우 사료 원료를 대부분 수입하는 점을 지적하며, 국내산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농업 부산물을 이용하면 사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우 가격을 높이는 외국산 사료 문제가 해결되면 한우 가격은 더 내려갈 여지가 생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 데 대해 조 박사는 “단기적으로는 어려운 시기일 수 있으나, 길게 보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200만 두 정도인 한우의 사육 두수가 안정되면 안정적인 가격으로 한우를 제공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품질이나 안정성에서 뛰어난 한우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한우 농가들이 당장의 개방에 불안해 급하게 한우를 정리하기보다 지속적인 개발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월간중앙 탐사취재2팀_ 김홍균 차장 / 함선유 인턴기자 redkim@joongang.co.kr / i-speaker@hanmail.net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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