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당신도 ‘부동산 거지’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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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23면

서울 강남의 박모(65)씨는 자영업을 하다 1년 전 은퇴하고 아내와 함께 노후를 보내고 있다. 자녀들은 결혼해 따로 산다. 그런데 요즘 고민이 생겼다. 그에겐 10억원 넘는 번듯한 아파트도 있다. 하지만 통장이 얇다. 자녀 교육과 결혼 자금 등으로 목돈을 쓰다 보니 정작 자신의 ‘실버 생활비’를 위해선 변변히 저축도 못했다. 국민연금이며 개인연금 같은 상품은 하나도 없다.

월급봉투 끊기는 60데 어찌하나

다행히 일을 관두면서 손에 쥔 점포 보증금 6000만원을 자녀의 권유로 지난해 말 A주식형 펀드에 넣어 꽤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불안하다. 이걸론 몇 년치 생활비를 충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달랑 한 채 있는 집을 팔자니 양도소득세가 아까워 엄두도 못 낸다. 교보증권의 김종민 강남PB센터장은 “현금 흐름이 딱 끊기는 게 ‘실버 재테크’의 가장 큰 골치”라며 “강남의 재산가 중에서도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귀띔했다.

작은 집으로 밑천을

돈을 벌어 자산을 불릴 수 있는 장년층과 달리 60대는 ‘지출형 구조’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내 집 마련’에 올인해 노후용 실탄 마련엔 둔한 사람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이른바 ‘부동산 거지(House rich, cash poor)’ 증후군에 골치 아픈 사람들이 숱하다는 얘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이달 중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417만 노인가구 중에서 아파트·땅 같은 재산은 있지만 수입은 없는 가구가 33%를 차지했다.

따라서 한국적 현실에선 ‘주택 리모델링’이 60대 노테크의 1순위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집을 확 줄여 이사하고, 남은 돈을 굴려 생활비를 만들라는 소리다.

문제는 서울·수도권 거주자들의 6억원 넘는 아파트에 대한 세금이다. 10억원짜리 아파트를 팔 때 양도차익이 5억원이라면 약 6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아쉽게도 딱히 절세할 묘책은 없다. 미래에셋증권 정산윤 자산관리전문 세무사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장기 보유자의 양도세 부담을 줄이는 ‘연분연승법’ 도입을 말하는 등 세금 완화 기대감이 일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국민 정서상 중과세 제도를 크게 거스르긴 어려울 것”이라며 “생활비로 골치 썩는다면 세금을 각오하고 작은 평형, 또는 외곽 신도시로 옮기는 게 낫다”고 했다. 물론 이때는 새로운 주거 환경에 익숙해지기까지의 불안감을 감수해야 한다. 정 세무사는 “다만 1세대 1주택자들은 세금 완화를 기대해봄 직하니 조금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만약 집을 ‘부부 공동명의’로 해두면 양도세를 줄일 수 있다. 양도차익이 2억원이라면 공동명의이기 때문에 각각 1억원씩 차익을 낸 것으로 보며 과표가 낮아져 세금도 적어진다. 물론 1가구 2주택자 같은 중과세 대상자는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65세 이상의 1가구 1주택자로 집값이 6억원 이하라면 올해 처음 도입된 ‘주택연금’도 활용함 직하다. 이 상품은 살던 집을 담보로 잡히고 연금을 받는 ‘역(逆) 모기지론’이다. 올해 70세이면서 5억원짜리 아파트가 있으면 종신으로 달마다 177만원을 받는다. 나이·집값별로 연금이 얼마나 되는지는 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www.khfc.co.kr)에서 조회할 수 있다.

‘3+50’ 법칙으로 생활비 굴리기

현금 곳간을 불리는 숙제도 다른 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까지 노년기 재테크는 종자돈을 떼일 위험이 작은 ‘안전자산’에 보수적으로 굴리는 게 덕목이었다.

그러나 장생(長生) 추세가 더 뚜렷해지면서 60대 이후에도 20~30년치 생활비가 필요해졌다. 은행에 넣고 야금야금 까먹으면 곳간은 금세 바닥이 난다. 적극적인 ‘노년 투자자’가 돼야 한다는 소리다.

교보증권 김 지점장은 ‘3+50 법칙’을 권했다. 먼저 3년치 생활비를 뚝 떼어 정기적금에 넣으라고 했다. 나머지 돈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라는 얘기다. 무기는 정통 주식형펀드와 주가연계증권(ELS) 같은 상품이다. 혼합형 상품에 투자해봤자 금리 변동으로 얻는 이익이 얼마 안 되고, 주가가 올라도 수익이 적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70~80%까지 이른 부동산 비중을 줄여 현금성 금융자산 비중을 50%로 유지해야 안전판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다만 미래에셋증권 김기영 도곡지점장은 “과도한 위험자산을 보유하는 것도 문제”라며 “금리에 플러스 알파 정도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좋다”고 했다. 재산 절반을 현금성 금융자산으로 꾸리더라도 공격적 상품은 30%, 금리·채권형 상품은 70% 정도로 추가 분산을 하라는 것이다. 그는 안정성을 위한 투자 상품으로는 우량한 회사의 채권이나 기업어음(CP)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장년 때부터 ‘나만의 집사(執事)’를 만들어 두는 것도 좋다. 하나은행 백미경 성북동지점장은 “요즘 유행하는 해외펀드만 해도 금융회사 직원들조차 바로바로 고급 정보를 얻기가 힘들지 않으냐”고 했다. 좋은 재정자문관은 좋은 친구 이상이라는 얘기다.

10년 증여의 마법

거액 자산가여서 생활비 걱정이 덜하다면 상속도 미리 손 써둬야 한다. 뭉텅이 세금이 줄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즐겨 쓰는 대표적인 방법은 증여다. 상속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받느냐에 관계없이 전체 금액을 뭉뚱그려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그러나 증여는 받은 사람 건별로 나눠 쪼개진 금액에 세율을 적용하기에 세금이 줄어든다.

미래에셋 정상윤 세무사는 “다만 물려줄 재산이 일정 규모 이상일 때만 증여가 유리하다”고 했다. 일괄 공제와 배우자 공제를 더해 보통 10억원까진 세금을 안 낸다. 따라서 재산이 15억원이라면 5억원이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된다. 5억원에 누진세율 20%를 적용하고, 추가 공제(1000만원)를 빼면 상속세는 9000만원이 된다. 그런데 세 자녀에게 5억원씩 증여한다면 자녀 공제(1인당 3000만원)를 뺀 4억7000만원이 과표가 되고, 1인당 8400만원을 세금으로 낸다. 이럴 땐 상속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증여는 대략 재산이 30억원을 넘어야 더 낫다. 증여는 또 10년 단위로 끊어야 한다. 상속할 사람이 숨지고 10년 이내에 증여한 재산은 상속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 상속을 개시할지 모르니 50대 이후부터는 10년마다 증여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증여를 하더라도 여생(餘生) 동안 쓸 자금은 넉넉히 남겨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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