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조폭도시’는 오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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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12면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하던 이상덕(29) 판사가 광주지법 목포지원 발령을 받은 것은 2월이었다. 법조계 선후배 중일부는 우스갯소리로, 일부는 진지하게 해준 얘기는 “목포에는 진짜 깡패가 많다더라”는 것이었다.

“거기서 멋 부리고 눈에 힘주고 다니면 바로 사시미질 당한다. 고등학생들과도 눈을 마주치지 말라.”

이 판사도 목포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항구’와 ‘조폭’(조직폭력배)이었다. 법원 소식지인 ‘법원사람들’ 9월호에 실린 이 판사의 목포 경험담은 이렇게 걱정과 두려움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가 막상 목포에 와서 접한 상황은 딴판이었다. 목포지청의 조직폭력 담당 검사는 “목포는 평안한 도시”라고 새로 온 판사들을 안심시킨다 “조폭 숫자가 얼마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싸움도 없고 다들 형제·친구처럼 지낸다”는 얘기였다.

목포가 조폭들에게 ‘척박한’ 환경인 이유를 얼마 후 법원 동호회원들과 회식한 뒤 목포에서 제일 유명한 나이트클럽에 들렀다가 알게 된다. 이 날 나이트클럽 손님은 이 판사 일행 10명을 합쳐 30~40명밖에 없었다. 동행했던 ‘지역 분들’은 “끼 있는 애들은 일찌감치 서울로 간다”고 설명한다.

길게 보면, 1945년 해방과 함께 목포가 국내 농산물의 일본 반출 기지 역할을 상실하면서 항구라기보다는 인근 도서 지역과 육지를 잇는 기능에 머무르게 됐다는 것이다.
유흥가가 설 자리를 잃게 되자 이곳을 생활 터전으로 하던 건달들도 떠나갔다. 이 판사의 생각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에까지 미친다.

“H그룹 K회장 사건 관련 기사에 등장한 유흥가 조폭들이 목포 출신이었다는 언급을 보셨을 것입니다. 서울 가서 생활하면 서울 조폭이지, 왜 굳이 출신을 따지는가 딴죽을 걸어보고도 싶지만···.”

그런데도 목포가 아직까지 항구와 조폭의 도시라는, 잘못된 통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판사는 직접적 원인을 2004년 개봉 영화 ‘목포는 항구다’에서 찾는다.
“목포는 더 이상 항구가 아니니, 이제 항구의 향락과 퇴폐 이미지도 면하게 해줘야 합니다. 향락에 물든 거품은 빠져 나가고, 이제는 순박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만 고향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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