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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부부는 닮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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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드니 다들 긴장했다. 마주 보라고 주문했다. 처음엔 굳은 얼굴 쑥스러운 표정이었다. 곧 환한 웃음이 터졌다. 마주 보이는 곳에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 그만큼 편안한가 보다… . 위에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남일우·김용림 부부, 남항우·박종예 부부와 딸 혜정씨, 강성명·김미현 부부, 백기형·이지영 부부

부부는 닮는다는 말을 많이 하지요. 정말 그럴까요. 궁금증을 풀고자 week&이 자를 들었습니다. 3년차, 13년차, 26년차, 43년차…결혼 햇수가 서로 다른 네 쌍의 부부를 조사했습니다. 옛 사진과 지금의 사진을 놓고 꼼꼼히 따졌습니다. 결론부터 귀띔하자면 부부는 오래 살수록 닮더군요. ‘닮·는·다’는 말, 괜한 속설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추석, 고향 가는 길에 옆자리를 살짝 보세요. 묵묵하게 옆을 지켜주는 내 남편과 내 아내가 있습니다. week&은 제안합니다. 이왕 닮아가는 것, 좋은 얼굴로 닮아가자고요. 상대방의 손을 꼬옥 잡아주세요. 그리고 속삭여 보세요. “고마워” “사랑해”.

글=홍주연·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부부는 과연 닮을까. week&이 얼굴 전문가 조용진 한남대 객원교수와 함께 실험해 봤다. 조 교수는 결혼 연차가 다른 네 부부의 결혼 전과 현재 사진을 비교해 이목구비 모양의 변화를 측정했다. 남일우·김용림(결혼 43년차), 남항우·박종예(결혼 26년차), 강성명·김미현(결혼 13년차), 백기형·이지영(결혼 3년차)씨 부부가 실험에 참여했다. 측정과 분석은 15~17일에 걸쳐 실시됐다.

 결과를 보니 결혼기간이 길수록 부부의 노화 방향과 속도가 비슷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얼굴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하는 시각적 눈꼬리의 경우 남일우·김용림씨는 결혼 전보다 각각 10.03%·9.19% 내려갔고 남항우·박종예씨는 8.05%·6.47%, 백기형·이지영씨는 3.04%·1.22%씩 변화했다. 결혼 기간이 가장 긴 남일우씨 부부가 노화의 정도 차이가 0.84%로 가장 적었다. 남항우씨 부부와 백씨 부부는 각각 1.58%, 1.82%의 차이를 보여 결혼 기간이 짧을수록 수치의 차이도 커졌다. 입꼬리·턱선 등을 측정한 결과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강씨 부부는 부인의 결혼 전 사진이 실험에 적합하지 않아 측정에서 제외했다.

 

이번 실험에서 측정한 항목은 눈·코·입의 크기 등 모두 150여 개에 달한다.

조 교수는 “결혼한 지 가장 오래된 남일우씨 부부가 노화의 진행 방향과 속도가 가장 비슷하다”고 말했다. 노화 경향이 비슷하면 관찰자는 두 사람을 더 닮은 것으로 느끼게 된다. 수치 차이는 1% 미만으로 미미하지만 관찰자는 이를 확대 해석한다.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가 오누이처럼 보이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부부는 또 얼굴 대칭까지 비슷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일우씨 부부의 경우 결혼 전 남편은 오른쪽 눈이 더 컸고, 아내는 양쪽 눈 크기가 같았다. 현재 남편은 양쪽 눈 크기가 같고 아내는 왼쪽 눈이 더 크다. 부부가 둘 다 왼쪽 눈이 커졌기 때문이다. 강씨 부부는 결혼 전 턱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결혼 10년이 넘은 지금은 부부의 턱이 모두 왼쪽으로 쏠려 있다. 조 교수는 “좌뇌와 우뇌 중 한 쪽만 쓰면 얼굴의 대칭도 변한다. 부부는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기 때문에 좌·우 뇌를 비슷하게 사용하고, 그래서 얼굴 대칭도 비슷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부부가 닮은 것이 같은 환경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란성 쌍둥이는 결혼과 취직을 기준으로 두 사람 얼굴이 달라진다”며 “이와 반대로 남남이던 부부는 함께 살면서 인상이 비슷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관찰자들이 부부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두 사람을 더 닮게 보는 것은 아닐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week&은 또 다른 조사를 했다. 부부 세 쌍과 부부가 아닌 남녀 두 쌍의 사진을 섞은 뒤 누가 가장 비슷한지 물어봤다. 조사 대상의 절반(A그룹)에게는 사진 속 남녀가 부부라고 했고, 나머지 절반(B그룹)에게는 이들이 남남이라고 말했다. 홍보회사 프레인 직원 40명이 지난 6일 설문 조사에 참여했다. 실험 대상 중 탤런트인 남일우씨 부부는 제외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결혼 기간이 긴 남항우씨 부부를 가장 닮았다고 답했다. 상대가 부부라는 것을 알든 모르든 조사 결과는 같았다. A그룹과 B그룹은 남씨 부부에게 8.1점과 8.4점을 줬다(10점 만점 기준). 강성명씨 부부는 두 그룹에서 모두 6.2점을 받았고, 결혼 기간이 짧은 백기형씨 부부는 4.5~4.7점을 얻었다. 일반인 남녀는 가장 낮은 점수인 3.6~3.7점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부부라는 선입견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부부를 닮은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용진 교수는 “환경이 얼굴을 바꾸기 때문에 화목하게 지내는 부부일수록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닮아간다.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고 웃는 일이 많을수록 더 좋은 얼굴로 늙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홍주연 기자

43년차 … 남일우·김용림 부부

 “자, 찍습니다. 눈을 마주보고 서세요.”

 사진기자의 ‘호령’에 두 부부가 눈을 맞춘다. 남편의 와이셔츠 깃을 잡아주는 아내의 입엔 웃음이 떠나지 않고,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도 흐뭇한 표정이다. 결혼 40년이 넘었다지만 신혼부부 못잖게 다정하다. 탤런트 남일우(69)·김용림(67)씨 이야기다.

 남씨 부부는 1961년 KBS 성우 선후배로 처음 만났다. 남씨는 갓 입사한 후배 김씨가 ‘건방져 보여’ 관심이 갔단다. 김씨의 눈엔 말없이 책만 보던 남편이 어렵기만 했다. “친구들과 함께 퇴근하면 남편이 항상 회사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처음엔 내 친구를 좋아하는 줄 알았죠.” 결혼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다. 귀한 막내딸이 외아들과 결혼하는 것을 김씨 부모가 반대하고 나섰다. 둘이 월급을 쪼개 결혼 자금까지 마련하니 부모님도 두 손을 들었다.

 65년 결혼 직후 김씨는 18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시집살이하랴 일하랴 애 키우랴 고달팠다. 결혼 3년 차가 되던 해 김씨는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은 묵묵히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그 일주일이 40년이 되어버렸죠.” 부부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80년대 들어서며 아내는 더욱 바빠졌다. 김씨는 MBC드라마 ‘사랑과 야망’에 출연해 85~86년 각종 연기상을 휩쓸었다. 같은 직업에서 일하는 남편의 외조가 아내에게는 든든한 힘이 됐다. 아이를 돌보고 학교에 찾아가는 일도 남편이 도맡았다. 그래서 탤런트인 아들 성진(37)씨가 동료 탤런트 김지영(33)씨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부부는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부부가 서로의 일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거든요. 아들 내외가 너무 예쁘게 살아서 대견합니다.(김용림)”

 젊었을 때 부부의 사진을 보니 달라도 한참 다르다. 남씨가 곱상한 ‘꽃미남’이라면 김씨는 시원시원한 생김새다. 전혀 다르던 두 사람이 40년을 살면서 조금씩 닮아갔다. 웃는 눈매도 말투도 비슷하다. “시집살이 하면서 고생을 많이 시켰어요. 다음 세상에 다시 부부로 만나서 더 잘해주고 싶은데 이 사람이 원할지….” 남편의 애정 어린 눈빛에 아내는 살짝 눈을 흘겼다.

홍주연 기자

26년차 … 남항우·박종예 부부

“결혼 후 가장 크게 싸운 때가 언제냐”고 물으니 두 사람, “글쎄 언제였더라”, “별로 기억이 없네”라며 눈을 껌벅인다. 충북 청원군의 남항우(48)·박종예(47)씨 부부. 26년째 함께 살며 싸운 기억이 한 번도 없다니 ‘잉꼬부부’가 따로 없다. “내가 화나면 욱하는 성격인 데 반해 이 사람은 입을 꾹 닫아버려요. 상대를 안 해주니 당최 싸움이 안 되죠. 나 혼자 씩씩거리다 혼자 풀고 말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성격 차 덕분에 가정의 평화가 지켜졌다며 남항우씨가 껄껄 웃는다.

 1982년 스물네 살 때 결혼한 박종예씨. 5년 전 시어머니가 치매를 앓다 세상을 뜨기 전까지 줄곧 시부모님을 모시며 두 아이를 키웠다. 전기회사에 다니던 남편은 바깥일로 늘 바빠 아내의 고충을 헤아려주지 못했단다. “당시엔 경제적으로도 쪼들렸고, 집안 일하랴 아이들 키우랴 농사일 거들랴 울고 싶은 때도 많았죠. 남편에게 서운했지만 내가 선택한 결혼이니까 참아야지 생각하며 버텼어요.” 아이들도 다 크고 이제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제가 옛날 사람이라 아내가 힘들어하면 항상 나무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고 살아준 게 고맙고 또 고맙죠.” (남씨)

 외모도 성격도 나무랄 데 없이 자라준 아들 기진(24·대학생)씨와 딸 혜정(23·회사원)씨는 부부의 살아가는 힘이자 자랑이다. 세 가족이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아들은 자격증 시험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딸 혜정씨를 사이에 둔 두 부부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놀랍도록 닮았다. “결혼 전에는 닮았다는 얘기를 한 번도 못 들었는데 요즘엔 꽤 들어요.”(남씨) “20년을 넘게 한집에서 같은 밥 먹고 살았는데 안 닮는 게 이상하지 않겠어요?”(박씨)

 온양온천으로 다녀온 신혼여행 이래 부부 둘만의 여행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이 부부. “아이들 결혼하고 자리 잡으면, 둘이 편안히 여행 다니는 게 꿈”이란다. 웃을 때 착하게 내려앉는 두 사람의 눈매가, 꼭 사이좋은 오누이 같다.

이영희 기자

13년차 … 강성명·김미현 부부

 강성명(47)씨는 부인 김미현(40)씨를 처음 만난 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확히 20년 전인 1987년 10월, 강씨는 파리크라상 안국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판촉사원 중에 볼이 통통하고 눈이 커다란 아가씨가 있었어요. 첫눈에 반했죠.” 배시시 수줍은 미소만 보이던 김씨는 강씨의 속을 많이도 태웠다.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헤어지자는 말도 여러 번 했죠. 7년 동안 한결 같은 모습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어요.” 김씨의 말이다.

 95년 결혼한 강씨는 얼마 안 있어 회사를 그만두고 제과점 창업을 결심했다. 목 좋다는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을 골랐다. 연고가 없어 막막했지만 아내는 남편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렇게, 친척과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파리바게트를 차린 것이 97년이었다. 장밋빛 꿈은 잠시였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를 맞았다.

 “너무 힘들었어요. 빚 독촉 전화는 쏟아지죠. 장사는 안 되죠. 동네 상인들은 다른 지역에서 왔다고 공공연히 따돌리죠.” 남편은 빵을 굽고 부인은 빵을 팔았다. 새벽 6시부터 밤 1시까지 쉴 새 없이 일했다. 서울에 맡긴 아이를 보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쪼개 서울에 잠깐씩 다녀오는 날도 많았다. 뼈가 부서져라 일했지만 1년이 지나도 매출은 제자리였다. “포기할까도 했습니다. 그런데 불평 한마디 없는 아내에게 면목이 없더군요. 다시 이를 악물었죠. 꼭 성공하겠다고(강씨).” “한창 고생하던 때였어요. 일을 마치고 집에 가니 꽃다발이 있었어요.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편지와 함께….” 채 말을 맺지 못하는 김씨의 눈에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부부의 정성이 조금씩 소문이 나며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손님들의 발길이 강씨의 빵집으로 몰리자 주변 가게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2004년엔 빚을 다 갚고 가게까지 늘렸다. 매장 직원도 4명을 뽑았다. 지난해에는 강씨 부부의 점포가 파리바게트 1500개 지점 중 ‘베스트 숍’에 뽑혔다.

 어려운 시기, 손잡고 넘어서일까. 부부는 요즘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10년 동안 함께 일해서 성격도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묵묵히 참아온 집사람이 참 고맙죠.” 부인이 거든다. “남편을 믿어요. 하루 세 시간씩 자고 일할 때도 짜증 한 번 낸 적 없어요. 지금처럼만 살고 싶습니다.”

홍주연 기자

3년차 … 백기형·이지영 부부

 백기형(32·회사원)·이지영(29대학 강사)씨 부부의 집 서재에는 커다란 재단용 책상과 재봉틀이 놓여있다. 한국복식 침선(바느질)을 전공한 아내 지영씨를 위한 것이다. 아내가 서재에서 바느질할 때 남편은 18개월 된 아기 혜인이를 돌본다. “주중엔 아무래도 제가 집안일을 많이 하니까 주말엔 집안 청소 등을 남편이 맡아서 해요. 서로의 일을 존중하고 살림은 분담하는 ‘요즘 부부’의 모습이다.

 2003년 소개팅으로 만나 2005년 초 결혼했다. “처음 봤을 때 밝은 얼굴이 맘에 들었어요. 환하게 웃는데 ‘후광’이 비치더라고요.” 남편 기형씨가 기억하는 아내의 첫인상. 반면 지영씨는 기형씨가 “팔도 짧고 다리도 짧아 다소 실망”이었단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즐거웠고, 특히 식당에서 메뉴 고를 때 망설이는 저를 대신해 선택해 주는 결단력이랄까 그런 부분이 맘에 들었어요.”

 기형씨는 좀처럼 ‘이벤트’같은 것을 벌이지 않는 대신 생활 속에서 작은 감동을 주는 스타일. “아기랑 놀다 집안이 잔뜩 어질러진 상태에서 잠든 적이 있어요. 다음 날 일어나니까 집안이 반짝반짝해요. 늦게 퇴근한 남편이 청소해 놓은 거죠. 감동 먹었어요.” 지영씨는 남편 몰래 작은 선물을 준비해 깜짝 놀래 주는 것을 좋아한다. “결혼하고 처음 맞은 크리스마스에 아내가 직접 만든 셔츠를 선물 받았어요. 옷감을 끊어다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고도 고맙더라고요.”

 동글동글한 얼굴형 때문인지 결혼 전부터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 부부. 요즈음은 성격이 점점 닮아가는 것 같단다. “원래 저는 서운한 일이 있으면 맘에 꾹꾹 담아뒀다 한꺼번에 터뜨리는 편인데, 남편은 그 자리에서 직설적으로 말해요. 이런 사람과 살다 보니 저도 제 생각을 그때그때 말하게 되더라고요.” 서로에게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하고, 잘못한 부분은 깨끗이 인정할 것. 이 부부가 알콩달콩 살아가는 비결은 ‘화끈 대화법’이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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