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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의 일본 (上) '중용의 혈통' … 극우 외교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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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일본 자민당은 23일 새 총재를 선출한다. 다수당 총재인 그가 25일 국회에서 정식으로 새 총리로 뽑힌다. 정황상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71.사진) 전 관방장관의 총리 취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아베 정권에서 '우(右)'로 확 쏠렸던 일본이 어떻게 방향을 틀지, 키를 쥔 선장 후쿠다의 앞길은 어떨지 3회에 걸쳐 짚어본다.

19일 오전 군마(群馬)현 다카사키(高崎)시의 후쿠다 사무실. 지구당을 지키는 지지자들은 후쿠다의 총리 취임 행사 준비로 바쁜 모습이다. 후쿠다가 총리에 오르면 군마현 조슈(上州) 지방에선 네 번째 재상이 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출신지 야마구치(山口)현 조슈(長州) 지방(8명)에 이어 둘째로 많다. 그러나 전후만 따지면 군마가 단독 1위다.

◆'중용'의 혈통 군마=두 지방의 전통은 판이하다. 메이지(明治)유신을 이끈 공로로 야마구치현 소카손주쿠(松下村塾) 출신의 여러 우익 인사가 총리가 됐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서 아베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익 냄새를 물씬 풍겼다.

반면 군마에는 걸출한 조정형 전략가들이 포진했다. 군마 지구당의 미야지마 겐지(宮島謙二.60)는 "야마구치 출신 재상들이 한쪽에 치우친 정치를 추구했다면 군마의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후쿠다 야스오의 부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는 중용(中庸)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서민파 후쿠다' '위풍당당 나카소네' '동네 아저씨 오부치' 등 일본 총리의 스타일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정신은 한결같았다. 후쿠다는 미국.아시아와의 균형된 외교정책을 관철했다. 나카소네는 현직 총리 최초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했지만 주변국이 반대하자 다음해 이를 멈췄다. 오부치는 미국으로부터 '식어버린 피자'란 비아냥을 받으면서도 미국과 아시아의 중요성을 동시에 강조하며 '한.일 파트너십'을 이뤄냈다. 모두 '균형'과 '조정'을 온몸으로 실천했다.

이 같은 성향은 전국시대 막강 가문들 틈바구니에서 지략을 구사해 훗날 메이지 유신 때까지 다이묘(大名.지방 영주)로 살아남은 군마의 무장 사나다(眞田) 가문의 전통에서 유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반급진형 중도' 지향=새 총리로 유력한 후쿠다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때 "일본 본토에서 미국과 한판 붙으면 죽창을 들고 싸우러 나가겠다"고 했던 열혈 초등학생이었다. 그러나 아자부(布) 고교와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거치는 동안 그의 성격은 내성적으로 변했다.

그 뒤 석유회사인 마루젠(현 코스모석유)에 들어가 17년간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다. 2년간 미국 주재원 경험도 했다. 정치는 동생이 계승하는 줄 알고 있었다. 1972년 총리 자리를 놓고 부친과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가 치열한 정쟁을 벌일 때도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친이 섭섭한 나머지 "야스오는 왜 저리 무뚝뚝하냐"고 한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야스오는 국제정세에 좌우되기 쉬운 석유 비즈니스에 관여하면서 정치와 외교는 현실에 입각해야 하며, 언젠가는 스스로 이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굳혀갔다. 천연자원이 없는 일본의 기업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최고의 외교이자 정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53세의 늦깎이로 정계에 입문한 그의 정치 스타일은 한마디로 '반(反)급진'이다. '지향하는 리더십'도 '강요하는 리더십'이 아닌 '균형 잡힌 리더십'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나 아베 총리처럼 "자민당을 깨부수겠다" "전후 체제로부터 탈피하겠다"고 외치는 데는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보인다.

이 때문에 후쿠다 신정권은 고이즈미-아베로 이어졌던 '우파 정권'과는 사상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큰 차이를 보일 전망이다.

그는 야스쿠니 참배 문제와 관련, 15일 "상대(한국.중국)가 싫어하는 것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대화로 풀어 나가야 한다"며 '압력' 위주였던 전임 총리들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금지한 정부의 헌법 해석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이나 헌법 개정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이다. 신중함은 후쿠다의 트레이드 마크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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