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김해 경찰 '알아서 축소 수사'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도박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한 도박꾼들을 경찰서로 데려가지도 않고 데려간 것처럼 허위 임의동행 동의서 작성하기. 도박 현장에서 압수한 판돈을 분실하기. 압수한 판돈을 도박꾼들의 요구에 따라 반환하기. 상습 도박 전과자를 확인하고도 범죄경력 조회서 파기하기.

4월 27일 새벽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경찰서 진영지구대에서 경찰관 11명이 한 일이다.

창원지검 형사3부는 도박 사건의 피의자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혐의(직무유기 등)로 김해경찰서 소속 경찰관 두 명을 구속하고 한 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이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에 나타난 경찰관들의 범죄 사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특히 경찰관들의 이러한 직무유기가 노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와 가까운 박모(53.진영읍 번영회장)씨가 지구대를 찾아와 선처를 부탁한 뒤 이뤄졌다는 점에서 어이가 없다.

경찰관들이 신고를 받고 남녀 혼성 도박단 22명이 '아도사키' 도박을 하는 현장을 급습한 것은 이날 오전 3시15분. 판돈 800만원을 압수하고 두세 명씩 순찰차에 태워 도박꾼들을 모두 지구대로 연행한 시각이 오전 4시20분이다.

이때까지 경찰관들은 가스총으로 도박꾼들을 제압한 뒤 화투와 판돈이 있는 모포를 덮치는 등 기세가 등등했다. 경찰은 화장실 지붕을 뜯고 달아나려던 도박꾼을 뒤쫓아가 붙잡을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그러나 도박꾼들이 연행돼 조사받던 지구대를 박씨가 다녀간 뒤부터 경찰관들의 수사 태도는 확 달라졌다. 사건을 축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찰은 연행한 도박꾼들에 대해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은 채 4시간 동안 방치했다. 연행 때의 기세 등등한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한 경찰관은 도박꾼들이 서로 의논해 네 명만 범행을 시인하는 속칭 '총대 메기'를 하게 했다. 범행을 시인한 도박꾼 네 명에 대해서만 현행범 체포서를 작성했다. 나머지 18명에 대해서는 혐의를 부인하는 내용의 간단한 진술서만 작성토록 배려했다.

한 경찰관은 범죄경력을 조회하다 도박 전과 7범임을 확인한 뒤 범죄경력 조회서를 파기해 버렸다. 검찰 관계자는 "공무를 집행 중인 경찰관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경찰관들은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이런 경찰을 바라보는 시민의 눈은 차갑다.

대통령의 친형과 가깝다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미리 알아서 긴 경찰을 보면서 시민들은 경찰 취재를 제한하는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김상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