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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다양성이 경쟁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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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세계 3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언스트 앤 영’의 베스 브룩 부회장과 중국 칭다오 맥주의 옌쉬(嚴旭) 부사장은 둘 다 운동선수 출신이다. ‘꺽다리’ 브룩은 학창시절 날리는 농구선수였다. 그는 선수 경험이 경영자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2006년 포브스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으로 선정했다. 규율을 지키는 절제된 생활, 근면한 자세, 집중력, 팀워크에 대한 이해, 그리고 실패해도 털고 일어날 줄 아는 오뚝이 정신은 운동이 남긴 최고의 자산이다.

 옌 부사장도 마찬가지다. 1999년 칭다오 맥주에 부임하자마자 그는 하루 1000㎞씩 달리며 도소매상을 훑었다. 1년 만에 적자경영은 흑자로 돌아섰다. “12세 때부터 8년간 수영 국가대표선수로 활동하며 닦은 강인한 체력 덕분”이란 게 그가 털어 놓은 성공비결이다.

 이들과 인터뷰하면서 과연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당연히 두 여성은 성공을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여자’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고정관념 및 편견과 싸우느라 진이 다 빠졌을 것이다.

 12~14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 전 세계 내로라하는 여성 리더 700여 명이 모였다. 세계의 여성 리더들은 첫날 워크숍 현장을 가득 메운 한국의 ‘알파걸’을 주목했다. 그들은 10만원의 비용을 내고도 400석 회의장을 빼곡히 채웠다. 자신의 커리어를 장단기적으로 어떻게 준비할지, 글로벌 인재시장에서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진정한 리더십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알파걸들은 세계의 성공한 여성 지도자들에게 유창한 영어로 쉴 새 없이 질문을 해 댔다.

 유수의 글로벌 여성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이들 알파걸이 ‘알파우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성 경영’을 도입할 것을 주문했다. 다양성 경영이란 다양한 인재를 확보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통합·융합되는 글로벌 시대에는 다양성과 협업 능력이 곧 경쟁력이다. 세계를 상대하는 기업이라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소비자의 욕구를 읽어 내고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서구 선진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성별과 나이, 인종을 뛰어넘어 다양한 인재를 채용하는 노력이 이미 20여 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다양한 인재 중 첫 번째로 주목받는 그룹은 여성이다. 우수한 여성들이 중도에 사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근무 여건을 만들어 냈다. 재택근무는 물론 정해진 시간 대신 편한 시간을 골라 일하는 탄력적 근무제를 도입했다.

 홍보 회사인 플레시먼 힐러드사의 아그네스 지오콘다 부사장은 “막내가 암에 걸렸을 때 온 회사가 아이 간호를 도운 덕에 오늘날의 내가 있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다. 백인 남성 일색인 채용 면접관을 다양화했다.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인재를 뽑기 위해서란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파트너 킬스턴 랑게는 “모든 남성 직원이 여성을 비하하는 농담에 절대 웃지 못하게 해야 여성이 잘 견딘다”는 게 회사 방침이라고 했다. 그들은 또한 여성 네트워크를 지원하기 위해 여성위원회를 만들고 리더십 교육을 통해 인재를 육성해 내고 있었다.

 이렇게 공을 들인다면 경쟁력은커녕 기업에 부담이 되는 건 아닐까. 대답은 ‘노’다. 미국의 캐털리스트라는 시민단체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 임원이 평균보다 많은 기업이 적은 기업보다 훨씬 많은 이윤을 냈다.

 포럼에 참석한 한국의 커리어 우먼 중에는 다국적 기업에 근무하는 이가 많았다. 이들은 여성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인재로 존중하는 기업의 인식 때문에 회사를 택했다고 했다. 우수인재를 채용하려는 국내 최고경영자(CEO)가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문경란 논설위원 겸 여성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