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음란물 유통 실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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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포르노'란 말은 우리나라에서 맞지 않는다. 불법 포르노가 있다면 합법 포르노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포르노라 낙인만 찍히면 처벌 대상이다. 공연이든, 출판물이든 관계없다. 때로는 제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처벌받기도 한다.

포르노는 모호한 어휘다. 처벌 대상이 될 땐 '음란물'로 불린다. 하지만 일반인에겐 노출이나 성행위의 수위가 '에로 비디오'보다 강하면 '포르노'로 통한다. 가령 '셀카'(셀프카메라)나 '몰카'는 음란물로 볼 수 있지만, 배우가 연기를 하는 전통적 의미의 포르노는 아니다. 그러나 일반인에겐 상관없다. 야하기만 하면 된다.

현재 국내 포르노의 유통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모두 인터넷과 관련있다. 지금도 서울 세운상가.청계천 등에선 속칭 '빨간 책'을 파는 데가 있긴 하다. 하지만 1만원을 내고 그런 걸 사는 이는 이제 없다. 그 돈이면 인터넷에서 한달 내내 질펀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유통 경로는 음란광고 e-메일. 지난해 말 '연말정산 이렇게 하세요'란 제목이 히트를 치더니 최근엔 발신자 '노무현'이 '보다 나은 2004년을 맞으시길'이란 제목으로 보낸 음란 e-메일이 화제가 됐다.

서울 용산상가의 S(29)씨를 찾았다. 낮엔 컴퓨터 수리공, 밤엔 'e-메일 사업자'생활 4년째인 그다. e-메일 주소 검출기를 통해 하루에 10만~15만통의 e-메일을 보내면 이중 0.5%쯤 답변이 온단다. 10만개를 보내면 5백개쯤 주문이 들어온다는 얘기. 불법 복제 CD 한장에 1만원이니 하루 수입만 5백만원인 셈이다. 이것저것 경비를 제하면 한달 순수익이 3천만~5천만원 가량. 이렇게 3개월 정도 영업하고 한동안 쉰다.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다. 관련 전과가 없으면 기껏해야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고 두세 달 뒤 집행유예로 풀려난다고 한다.

또 다른 유통 경로는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다. 요즘엔 한국인 배우가 등장하는 한글 포르노 사이트가 단연 인기다. 3~4년 전만 해도 탈선한 일부 해외 동포나 유학생의 동영상이 전부였지만 최근엔 국내 업자들이 해외로 건너가 촬영을 하고 현지에서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한다. 굳이 해외에서 제작하는 이유가 있다. 포르노가 합법인 국가의 서버를 사용할 경우 국내법에 따른 처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래서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꼬박꼬박 세금 내며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국내 성인 콘텐츠 제작업자들은 국내법의 규제 조건에 맞추느라 '에로 비디오'보다 수위를 높이지 못한다. 그럼에도 늘 단속 대상이 되고, 음란 퇴폐 문화나 양산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진짜 퇴폐 문화의 온상은 인터넷을 통해 유입되는 해외 거주 한국 포르노 사이트들이다. 한국 인터넷성인문화협회 임만수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이 협회는 성인 인터넷 방송국 등 성인용 콘텐츠를 합법적으로 제공하는 30여업체의 이익단체다.

"해외 거주 한국 포르노 사이트는 지난해에만 5백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업계는 파악한다. 이미 국내 합법 사이트의 수익 규모를 넘어섰다. 이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국내에서 양심적으로 영업한다는 건 바보짓일 수 있다."

한국인 배우가 변태적인 성행위도 서슴지 않는 해외 거주 한국 포르노의 득세는 국내 인터넷 문화에도 심각한 부작용을 끼친다. 인터넷엔 지금 '셀카'가 인기다. 자신의 성행위를 얼굴만 편집한 채 인터넷에 뿌리는 풍토가 생긴 것이다. 아마추어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포르노물을 단지 '재미'로 유포한다. 일말의 도덕심도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 지금 인터넷을 휘젓고 있다. 그러나 마땅한 대책은 사실 없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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