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못하고 윤리마비(긴급연속 좌담:①신세대 가치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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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조그마한 충격에도 못견디는 “유리그릇”/성적·학벌등 눈앞의 목적에만 집착/자아의식 강하지만 책임은 안져/「물질보상=사랑」 부모의식도 문제
한약협지부장 부부 피살사건은 비록 극단의 사례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보인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공동체의 위기」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같은 상황의 근본원인은 무엇이며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긴급연속좌담」을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주>
▲김인회교수=부모살인이라는 끔찍한 패륜행위를 계기로 청소년들의 비뚤어진 가치관과 윤리의식 마비현상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정상을 깡그리 말살한 이번 사건은 그 자체로서 뿐만 아니라 가족,좀 나아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사회의 건강성을 지켜주었던 윤리·도덕 등 보이지 않는 문화적 제동장치가 풀렸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최규연교수=요즘 X세대니 신세대니 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것은 너무 피상적인 접근입니다. 신세대는 풍요함속에서 자란 대신 전쟁과 가난을 겪었던 부모세대의 한풀이 대상이 돼 독립적인 인간보다는 일종의 소유물로 교육돼왔습니다. 이는 결국 자녀에 대한 과보호와 연결되는데 물질적으로 즉각즉각 보상해주는 것을 사랑으로 생각하고 부모의 할 일을 다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강지원부장=범죄통계는 청소년들의 윤리성 마비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10대에서 20대 초반의 비행은 매년 10만명을 넘고 있고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 연령층의 인구가 줄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비행 청소년의 비율이 그만큼 증가하고 있는 셈이지요. 특히 강도·살인 등 강력사건의 경우 40∼50%는 10대가 저지르고 있으며 성폭력범도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락·환각성 범죄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폭을 그리고 있습니다.
▲김 교수=요즘 젊은이들은 가족 밖에서는 혼자보다는 집단화돼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아의식은 강하지만 익명성 뒤에 숨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세태의 반영으로 생각됩니다. 최근 흔히 말하는 X세대는 기성세대가 모든 일에 주저하고 소극적인데 비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혼자 외국여행을 떠나는 등 실천력도 있어 진취적·개방적이라는 긍정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위험한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최 교수=최근 신세대들은 윤리불감증을 지나 윤리폐기 시대를 사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예요.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과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를 멸시하는 풍조마저 일고 있고 오히려 거꾸로 하는 것이 새롭고 잘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이는 초·중·고 윤리교육이 없다는 것을 반영함과 동시에 물질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정신적인 진리와 지주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데 너무 소홀한게 아니냐는 반성을 하게 합니다.
▲김 교수=60년대말 미국에서 마리화나가 번질때 정신분석학자는 「분열증의 시대」라는 용어를 썼는데 우리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문명병을 앓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80년대는 젊은세대가 문화동질성을 공유하고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대의명분아래 뭉쳐 이들의 행동이 합리화되기도 했으나 90년대 들어서는 이러한 것이 없어지면서 물질소유나 성적·학벌 등 가시적인 것에서 자기존재 욕구를 실현하려 했습니다.
욕구충족의 통로가 제한되고 경쟁논리가 판치게 된 것이지요. 여기에다 타협보다는 밀어붙이기가 성행했던 정치판에서 젊은이들은 「할 수 있는 것은 하면된다」는 가치관을 배우게 됐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왔기 대문에 기성세대 기준에서는 부도덕한 일도 신세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감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강 부장=남을 생각 안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신세대에게 바람직한 가족윤리나 변화된 사회에 맞는 가정의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지금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요인입니다.
▲최 교수=개인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원하는 것을 거의 가질 수 있는 유복한 시대를 살고 있는 신세대는 굳이 남에게 기대할 이유가 없어서인지 공동체 생활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게다가 사회의식이 들면서부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앞서고 나아야 한다는 경쟁심이 이기주의로 나타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정글법칙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지요.
▲김 교수=특정한 목적의식을 갖고 인간의 행동을 인위적이고 계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성세대의 잘못된 청소년관에서 눈에 보이는 실적이나 업적에만 매달리는 인간군이 대량 형성됐어요. 뒤늦게 자신들의 생활이 호연지기나 인간다운 삶과는 동떨어졌다는 것을 인식할 나이가 되어서도 이에 대한 변화에 엄두가 나지 않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요즘 대학생들은 약점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유리그릇처럼 상처받기 쉬운 젊은이들이기에 하찮은 일에도 공격적인 방어성향을 나타나는 것이지요.<정리=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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