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우먼 섹스 활용, 성공에 효과 있나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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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씨가 16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신씨가 입국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오종택 기자

신정아씨의 가짜 학력 파문으로 전문직 여성들은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직업적 성공을 위해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활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속속 밝혀지고 있는 신씨의 행적을 미뤄보면 마치 답이 '예스'인것 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는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힘 있는 선배나 원로와 접촉하면서 이른바 신분상승을 이어갔다. 그 가운데 일부는 직업적 교류의 범위를 벗어난 것도 있다. 신씨 자신도 주변 인물들에게 ‘여자라서 오히려 출세하기가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신정아의 성공 방정식, 즉 출세를 위해 여성을 활용하는 방식은 과연 성사 가능성이 높을까?
이에 관한 국내 학계의 연구는 아직 찾아 볼 수 없다. 반면 영미권에서는 이 주제가 최근 들어 상당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간의 이목을 끌어당겼던 책 중에 1995년에 발간된 베스트셀러 ‘성적 유혹으로 성공하기(Flirting for Success)’가 있다.

이 책은 남녀간의 데이트 분야에 머물러 있던 성적 유혹을 최초로 직업 분야로 끌어들였다. 성공학 강사이자 백만장자 조셉 스피겔의 손녀인 질 스피겔은 이 책으로 ‘유혹학(flirtoloy)’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이 책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믿도록 해 인맥을 구축하는 9가지 비법에 대해 적시해 놓았다.

저자는 이 비법들이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을 표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점에서 단순히 성적 유혹을 활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비법의 상당수는 남녀간의 데이트 기법을 발전시킨 것이다. ‘전화로 유혹하기’를 예로 들어보자. 자신한테 도움이 될 만한 사람과 통화를 할 경우, 다음의 네 가지 룰을 따르라고 조언한다.

첫째, 열정적으로 전화를 받아라. 그래야 자신에게 호감을 갖는다고 여기고, 반대로 상대방도 호감을 갖게 된다. 둘째, 전화 통화를 한 사람의 이름을 반드시 기억해두고, 필요하다면 다른 자리에서 그 사람 이름을 활용하라. 셋째, 뭔가를 부탁하거나 팔 일이 있으면, 바쁜 주초가 아니라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 목, 금요일에 하라. 넷째,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 부탁할 일이 있을 때는 ‘~해줄 수 있어요?’라고 하기보다는 ‘~가 필요해요’라고 보다 절박하게 이야기 하라.

◇성적 유혹은 종종 파국으로 끝난다

여성들 사이에 이런 식의 기법들은 실제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최근들어 주요 경제단체나 경영대학원에서 이와 관련된 주제로 단기 비즈니스 코스로 개설하고 있을 정도다.
‘유혹 성공학’ 등의 이름이 붙은 1일 혹은 한 나절간의 과정에는, 대개 연애 상담가들이 강연자로 나선다. 이런 비즈니스 코스는 그 어느 코스보다도 더 많은 수강생을 불러 모으는 인기 강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강연이 내거는 모토는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유혹은 21세기 경쟁 사회에서 정상에 오르는 최선의 길!’ 같은 식이다.

그러나 2005년 10월에 발표된 연구 결과는, 이른바 유혹학의 통념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미국 튤레인대 연구진은 164명의 경영대학원 졸업 여성을 심층 면접했다. 그 결과 밝혀진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인 50.6%가 성공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성적 유혹을 활용한다고 밝혔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는 49.4%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무기로 활용하는 이는 평균 연봉이 비교적 낮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연봉은 평균 5만~7만5000달러(약 4600만~6900만원)에 머무른 반면 반대의 경우는 평균 연봉이 7만5000~10만달러(약 6900만~9200만원)에 달했다. 한 마디로 여성을 활용한 신분상승 노력이 생각보다는 주효하지 않는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오히려 이 연구를 주도한 이 대학의 수잔 찬-세라핀은 “성적 유혹을 자주 활용하는 여성들은 장기적으로 여성적이라는 점이 부각돼 오히려 직업적 성공에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남자라고 해서 직업적 성공을 위해 섹스어필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결과는 이 해 세계 경영학회 연례 회의에서 ’직업에서 무기로서의 성: 성공을 위한 유혹인가 재앙을 부르는 유혹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돼 숱한 논란을 낳았다.

이 논문 발표 이후 최근 학계의 경향은 여성의 성적 유혹은 단기적으로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성공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보는 쪽이다. 여성이 지나치게 성적 유혹을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전문 컨설턴트들은 사무실이나 해당 직업 분야에서 보다 보수적으로 처신할 것을 권고한다.

첫째, 자신의 이미지를 가다듬어라. 꽉 끼는 탱크톱이나 슬리퍼,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는 강한 이미지를 심을 수 없다. 대신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걸맞는 옷을 입어라.

둘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지 말라. 동료와 선후배들간의 직업적 거리는 팔이 닿는 거리 바깥으로 유지해라. 부득이한 경우에 포옹을 할 수는 있지만, 가벼운 것이라야지 꽉 껴안는 식은 곤란하다.

셋째, 해당 분야의 가십통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마라. 사생활을 비롯한 개인적인 정보는 최소한만 공개하라.

이쯤되면 장기적 성공을 향해 내달리는 전문직 여성들이 신정아씨 사건을 통해 진정으로 배워야 할 점은 자명해진다. 한 때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파국을 향해 내달린 신씨처럼 되지 않으려면 성적 유혹이라는 스스로의 유혹에 과감히 ‘노’를 외쳐야 할 것이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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