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현대미술제 총괄커미셔너 佛레스타니씨에 업계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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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겨울께 미술계에서는 턱수염이 무성한 프랑스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씨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될 것같다.
한국미술협회가 그를 오는 12월중순 개최할 서울定都 6백주년기념「서울국제현대미술제」의 총괄커미셔너로 위촉했기 때문이다.
커미셔너란 국제전같은 대형기획전에서 전시방향을 결정하고 작가선정을 책임지는 직책으로 대개 이름난 미술평론가들이 맡아왔다.
60년대「누보레알리즘」의 주창자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던 레스타니씨는 사실 국내미술계에 낯선 외국인사는 아니다.
지난 86년 한불수교 1백주년을 기념해 열린「서울-파리전」으로 한국과 첫인연을 맺은 이래 그는 거의 매년 한국을 찾고 있다. 1백억원이상을 쏟아부었던 88서울올림픽 기념현대회화전과 서울올림픽조각공원 건립에 커미셔너로 참가해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고,그 이듬해 국제지명공모전으로 열린 서울국제미술제에서도 역시 커미셔너를 맡았었다.
거액의 보수가 오가는 이런 큰 행사말고도 그는 지난 몇년간 프랑스에서 열린 한국작가들의 굵직한 전시마다 얼굴을 내밀고 서문을 써주기도 했다.그러나 이런 경력의 레스타니씨가 또다시 서울국제현대미술제란 대형 국제행사에 커미셔너로 선정 된데 대해 미술계는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평단에서는『왜 매번 같은 사람인가.한국미술을 이해하는 영향력있는 해외미술인이 고작 레스타니씨 뿐인가』라는 말로 심한거부감마저 내보이고 있다.
한국미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선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갖춘해외인사를 통하지 않을 수 없고 그만큼 비용도 들여야 한다.
그러나 몇번의 행사를 통해 親韓派로 알려지게된 외국미술계인사들이 한국미술계를 마치「주인없는 돈지갑」처럼 보고 있는데 대해미술계는 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徐成綠씨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에서 내는『미술평단』봄호에서 이들을 가리켜『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한국미술에 대한)연구보다는 기획이나 흥행에 관심이 있는 貪韓派』라고 몰아세웠다. 이같은 미술계의 일반적 정서나 젊은 평론가들의 입장과 달리 아직은 우리미술이 외국미술인들의 인맥을 빌려야한다는 주장도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서울국제현대미술제의 운영위원으로 임명된 서양화가 朴栖甫씨는『국제행사를 제손으로 해보겠다는 젊은 평론가들의 의욕은 좋다.그러나 작품값이 수십만달러 하는 해외 유명작가들을 전화 한통으로 한자리에 모을수 있는 이들 유력인사들의 도 움을 받지 않을수 없는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잘라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도 불구하고 국내미술계에선 미국이나 유럽미술계의 우리미술에 대한 관심이 전례없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이를이용해 보다 적은 비용으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어낼수 있으리라는 생각들이 훨씬 우세하다.
실제 지난 3월과 4월 두달동안 지노 디 마지오 이탈리아 무디마미술관장,한스 베르너 슈미트 독일 키엘미술관장,제르멩 비아트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장,미셀 누리자니 르 피가로지 미술평론가,존 불라르 미국 뉴올리언스미술관장등 국제미술계에 서 큰 목소리를 내는 유력인사들이 줄줄이 한국을 다녀갔다.
그 상당수가 公的인 일없이도 자진해 서울을 다녀갔다.
국립현대미술관 朴來卿학예실장은『우리미술을 해외에 알릴수 있는여건이 상당히 좋아졌다』는데 동의한다.그러나 그녀는『우리미술을소개하는 목적이 이미 정리가 끝난 서구미술사에 한줄의 기록을 남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면,또 앞으로 서구미 술의 현장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한판 승부를 벌이려는데 있다면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루트를 찾는게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덧붙이고있다. 한국미술을 소개할 새 루트를 찾는 일과 함께 국제화를 겨냥하는 국내미술계의 당면한 일로 국제적 감각을 갖춘 미술인들을 양성해야한다는 주장이 비중있게 거론되고 있다.
많은 미술사.미술전공자들이 국내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하고 있다.현재 미국에서만 현대미술사를 전공하며 박사학위과정을 밟고있는 한국인이 20명을 훨씬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이 학위를 마치고 돌아 와 현장에서활동하려면 적어도 5~10년은 걸려야 한다.그동안은 지금처럼 버텨야 한다는데 국내미술계의 딜레마가 놓여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술계에서는 탐한파로 지목된 인물들보다는 훨씬 양심적이며 학구적인 새로운 인물들을 찾는게 미래의 한국미술을 위한 인맥구축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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