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해불양수】바다는 물을 가리지 않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신화는 책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밤하늘에 펼쳐져 있다. 분주한 일상의 낮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외로움이 그리움으로 변하는 순간부터 별들은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별들이 모여 사는 은하수는 공중에 떠 있는 신비의 강이다. 그곳엔 안드로메다 공주와 그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가 있다. 제우스의 아들 아르카스가 변한 작은 곰이 있는가 하면 헤라 여신의 명을 받들어 오만한 사냥꾼 오리온을 죽인 공로로 별이 된 전갈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름이 다르듯 사연도 제각각이다.

 별들도 우유처럼 등급이 있다. 1등급과 6등급 스타의 밝기는 100배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별의 밝기는 실제와 차이가 있다. 과학자들은 별들을 같은 거리에 가져다 두고 비교해야 절대등급이 매겨진다고 말한다.

 스타의 조건. 첫째, 어두울 때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해야 스타로 인정된다. 둘째, 멀리 있다. 친근감과 신비감의 거리 조절이야말로 스타의 생존전략이 된다.

 대중은 스타를 동경한다. ‘저 별은 나의 별’이라고 노래하며 꿈을 키우고 갈채를 보낸다. 하지만 굳게 믿어서는 곤란하다. 대중의 마음은 날씨와 비슷하다. 맑다가 흐리다가 한다. 분위기에 휩쓸려 빗물과 함께 하강해서는 다시 은하수로 돌아갈 수가 없다. 별똥별의 신세로 전락한다.

 바다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유혹 앞에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늪에 빠지고 여차하면 폭포에서 추락한다. 솔직하고 겸손하고 부지런해야 산다는 걸 복습하지 않으면 낙오는 시간문제다. 하지만 스타는 사라져도 교훈은 남는다. 사람들이 스타의 명멸에서 인생의 가르침을 얻는 것은 일종의 덤이다.

 한때 테리우스로 불렸고 월드컵 때는 ‘반지의 제왕’으로도 추앙을 받았던 안정환이 구설에 올랐다. 상대편을 응원하는 팀 중 일부가 자신을 집요하게 조롱하는 것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마침내 응원석까지 뛰어올라간 것이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경기 중에 운동장을 벗어났을까. 사건이 발생했으니 이젠 시비를 가려야 한다. 좋은 해결책은 당사자들이 만나 화해하고 서로 반성하는 일이지만 문제는 기억과 기록이다.

화는 반드시 화를 부른다. 듣기 좋은 음악에만 귀를 열고 언짢은 소리에는 귀를 막는 것은 품격 있는 처신이 아니다.

안 좋은 소리가 들리면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그때 받은 게 많았으니 이제 좀 잃어도 보자’라고 주문을 거는 게 좋겠다. 아직까지 누군가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기뻐하는 적극적 모드로 마음의 방향을 돌리자.
더 나아가 환호는 밥이고 비난은 약이라고까지 간주하면 어떨까. 욕먹는 시간을 약 먹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스타의 빛은 태우라고 있는 게 아니라 비치라고 있는 것이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전 이화여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