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직업] "영어·현지어는 기본이죠 세계의 하늘이 내 일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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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한국인 승무원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외국 항공사의 한국인 채용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200여 명의 한국인 승무원을 뽑은 에미레이트항공은 올해에도 여섯 차례에 걸려 200여 명을 선발한다. 이상진 에미레이트항공 한국지사장은 “100여 국적 8000여 명의 승무원 가운데 한국인은 550명으로 영국인 다음으로 많다”고 전했다. “본사에서 매년 100~200명의 한국 승무원을 추가로 채용할 계획”이라는 말도 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에 본사를 둔 이 항공사는 보유 항공기가 104대에 달하는 세계 10대 항공사의 하나다. 그러나 여성의 노출을 제한하는 이슬람 교리에 따라 자국 승무원이 거의 없어 전 세계에서 승무원을 선발한다. 2005년 한국에 취항하면서 2년 만에 한국인 직원이 두 배로 늘었다. 이 항공사뿐 아니라 UAE의 수도 아부다비를 근거로 한 에티하드항공, 카타르의 카타르항공, 홍콩 캐세이패시픽항공 등에 한국인 승무원이 100명 이상 근무한다.

 ◆제한 사항은=에미레이트항공의 여승무원 키 제한은 1m57.5㎝ 이상으로 국내 항공사(1m62㎝ 이상)보다 너그러운 편이다. 다만 팔을 위로 쭉 뻗었을 때 바닥에서 손끝까지의 길이가 2m12㎝가 돼야 한다. 카타르항공과 에티하드항공도 키 제한은 1m56~1m58㎝ 정도다. 캐세이패시픽은 팔이 2m8㎝ 이상 높이에 닿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승객을 도와 머리 위 짐칸에 수화물을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특별한 용모 제한은 없지만 반팔 근무 복장을 감안할 때 팔꿈치나 무릎 아래에 흉터가 있으면 뽑히기 어렵다. 중동 항공사들은 갸름한 서구 미인형 얼굴보다 동그란 얼굴 형태를 선호한다. 싱가포르항공은 전통의상을 입고 근무해 허리 선을 중심으로 한 몸매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외항사들은 ANC인터내셔널이나 아바에어인터내셔널 등의 채용 대행사를 통해 서류심사와 2~4차례의 면접을 통해 50명 안팎의 합격자를 뽑는다. 최종 면접은 본사 직원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실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원자들이 많아 경쟁률은 늘 200대1을 넘나든다. ANC 관계자는 “본사의 최종 심사는 단순히 서류상의 이력이나 영어 능력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까지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애초 이력서를 만들 때부터 꼼꼼하게 경력을 비롯해 자신의 장점과 특징들을 정리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무조건 예스 식의 답변은 금물이다. 올해 합격한 한 승무원은 최종 면접에서 일본인 동료와 한 방을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다른 이들은 대개 “상관없다”고 답했지만 그는 “한·일 간에는 역사적·문화적으로 미묘한 긴장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소신 있는 의견 개진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는 것.
 오만항공과 싱가포르항공·중국 동방항공 등이 현재 승무원 채용을 하고 있다. 또 중국 남방항공은 26일까지 원서를 받는다. 다음달 중에는 에미레이트항공이 추가 채용에 나선다. 외국계 항공사들은 수시 채용을 하기 때문에 관련 사이트를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근무 환경은=외국인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 에미레이트항공의 경우 한 여객기에 탑승한 15명의 승무원이 많을 때는 11개의 국적을 갖고 있을 정도로 다인종·다문화 환경이다. 외국어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고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다른 문화를 적극 수용하려는 태도와 함께 영어와 해당 국가의 공용어 구사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합격할 경우 첫해는 각종 연수와 업무를 배우는 과정이라 연봉이 2000만원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2년차부터는 본격적으로 비행수당을 받으면서 연봉이 3000만원대 이상으로 높아진다. 중국 동방항공 등 중국 항공사들은 한국에서 살며 중국을 왕복하는 방식으로 근무한다.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중국행 항공기에 탑승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나흘간 전 세계를 돌며 근무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국내 항공사들과 생활패턴이 비슷한 것이 장점이다.

 중국계를 제외한 외항사들은 해외에서 근무해야 한다. 중동 항공사들은 거주할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 호텔을 통째로 전세 내 승무원 숙소로 삼거나 두세 명이 함께 항공사가 마련해 준 아파트에서 기거한다. 결혼하면 배우자와 함께 살 수 있다. UAE에서는 현지에 집을 마련하면 99년짜리 거주권을 준다. 한국에는 연간 30일 안팎의 휴가를 활용해 한두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아바에어의 장영신 팀장은 “승무원 교육에 1년의 시간과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항공사 입장에서도 가능한 한 오래 근무하길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특유의 끈기로 3년 계약기간을 채우고 연장하는 경우가 많아 호평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창우·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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