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금융시장 바꾸는 '파생상품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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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베어링은행의 파산(1995년), 해외펀드에 투자한 SK증권의 대규모 손실(97년), 미국 투자회사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9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로 인한 세계 금융위기(2007년)….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뭘까? 정답은 모든 사건에 파생금융상품이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생상품이 이 같은 ‘악마적’ 특성만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잘만 활용하면 투자 위험을 감소시키고, 적은 돈으로 큰돈을 벌 수 있게 하고, 보다 쉽게 자본을 조달할 수 있게 한다.

 금융 빅뱅을 예고하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국내 금융계에 최근 파생상품 열풍이 불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은 파생상품 관련 인력을 적극 충원 중이다. 시중은행·증권사·자산운용사와 같은 금융회사들마다 파생상품 관련 조직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파생상품 없이는 선진 금융도, 경쟁력도 없다’는 게 이유다.

 ◆폭발하는 파생상품 시장=파생상품은 본래 현물거래의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주가·금리·환율·상품 등을 각종 옵션과 선물, 스와프(교환)와 같은 금융기법을 섞어 만들어 내는 첨단 금융상품. 주가 등 거래 대상과 금융기법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자기 입맛에 맞게 상품을 고를 수 있다는 얘기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90년 3조5000억 달러였던 세계 파생상품 거래 규모는 지난해 453조 달러로 16년 새 130배 증가했다. ‘폭발적인 성장’이다.

 국내 파생상품 시장도 2003년 2경1548조원에서 올해는 6경대로 시장 규모가 세 배가량 늘 전망이다. 하지만 미국·일본과 같은 금융강국에 비해선 아직 초라한 수준이다.

 ◆국내 금융업계 “이제 시작이다”=97년 SK증권은 선물과 옵션을 교묘하게 결합한 토털리턴스와프(TRS)에 투자했다가 태국·인도네시아 통화의 급락으로 1000억원대의 손실을 봤다. SK증권을 따라한 여러 금융회사가 크고 작은 타격을 입었다. 이 같은 경험 때문에 국내 금융사들은 파생상품 투자에 다소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바뀌고 있다. 일반인이 많이 사는 주식연계증권(ELS)·주식워런트증권(ELW)· 파생결합증권(DLS) 등은 모두 파생금융기법을 활용한 금융상품이다. 심지어 정기예금에도 금리스와프를 이용한 상품이 나왔다. 게다가 자통법이 2009년 시행되면 파생상품 분야의 확대는 금융회사의 선택이 아니라 생존요건이 된다.

 우리은행 파생금융팀 김종근 팀장은 “자통법은 증권·자산운용사의 투자은행(IB)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경쟁 상대인 은행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며 “특히 업종을 불문하고 투자은행(IB)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선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와 관련 조직의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2004년 20명에 불과했던 파생금융팀 직원을 현재 55명으로 늘렸다. SC제일은행도 2005년 10월 파생상품 딜링룸을 확대 개편하면서 당시 40명이었던 직원이 현재는 80명으로 불어났다. 증권사·자산운용사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커지자 감독기관도 바빠졌다. 금융감독원은 2004년 4월 파생상품감독팀을 출범시켰고, 검사기능 강화를 위해 지난해에만 16명의 파생상품 전문인력을 공채했다. 금융감독위원회도 올 2월 복합금융감독과를 신설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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