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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75억 촬영장’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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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문경을 찾은 관광객들이 새재공원에 들어선 KBS 드라마 ‘태조왕건’ 촬영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황선윤 기자]

14일 오전 문경 새재공원 안 KBS 드라마 ‘태조왕건’ 촬영장. 왕건 본가의 담장은 최근 내린 비에 무너져 있었다. 공원관리사무소 직원 정지백(49)씨는 “지은 지 10년이 지나면서 담장·지붕 기와가 떨어지거나 나무·합판으로 된 벽체가 틀어지는 등 노후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가를 둘러보던 인하대생 이모(27·전자 3)씨는 “생활도구 등 소품과 체험 이벤트가 없어 재미 없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 이모(27)씨는 “설명 간판 등이 없어 당시 시대상을 알기 어렵다”며 아쉬워했다.

이 촬영장에는 고려·백제 궁궐과 초가·기와집 96동이 조성돼 있다. 1999년 KBS가 25억 원, 문경시가 4억3000만 원을 각각 부담해 2000년 2월 완공한 것이다.

문경시가 낡은 이 촬영장을 헐고 새 촬영장을 짓기로 하자 지역에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 ‘대왕 세종’을 촬영하려는 KBS 측 제의에 따라 촬영장 건립비 75억 원 전액을 부담키로 한 때문이다. 시는 “관광객 증가로 3년 내 건립비 75억 원을 뽑고 이후 지역 홍보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에선 “왜 전액 시비로 건립하나. 예산 낭비 소지가 있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문경시 “관광객 유치효과”=문경시가 거액을 들여 촬영장을 지으려는 것은 관광객 유치효과 때문.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새재공원 입장객 등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경시 담당 직원 엄원식(39)씨는 “세종대왕은 좋은 이미지로 인기가 예상돼 건립비 회수는 물론 엄청난 홍보와 연계 관광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건립비에 대해 이성유(54) 문화예술과장은 “건물 동수가 늘어난 데다 플라스틱류·합판을 많이 쓴 왕건 세트장과 달리 목재·기와 같은 실제 재료를 많이 써 반영구적 건물을 짓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는 지난달 30일 주민설명회를 연데 이어 75억 원 중 올해 분 30억 원을 의회에 신청해 승인이 나는 대로 이달 중 KBS와 협약하고 연말까지 촬영장 건립을 마칠 계획이다. 촬영장 건립 뒤에는 축제 같은 연간 30여 개 행사 중 일부를 촬영장에서 개최하는 등 관광객 유치에 나서기로 했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천혜의 관광지인 새재와 촬영장이 상승효과를 일으켜 문경에 틀림없이 이익을 줄 것”이라며 “국·도비를 지원받아서라도 건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비 전액 부담은 불가”=문경시의원 10명 중 7명은 지난달 연대 서명한 반대 의견서를 시에 전달했다. 의회는 “열악한 지방재정 형편에 비해 투자 효율성과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담보할 수 없는 소모성 투자”라고 주장, 건립 철회를 주문했다. 재정자립도 18.3%인 문경시가 총예산의 2.7%, 사업예산의 4.7%에 해당하는 75억 원을 촬영장에 투자하는 것은 ‘퍼주기’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회는 현 촬영장은 건립비 일체를 KBS 측이 부담하고 문경시는 부지 조성 등 부대비용만 부담한 점을 들어 시에 “더 이상 방송사 주장에 휘둘려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KBS 측에도 건립비 전액을 문경시에 떠맡기지 말 것을 촉구했다.

김지현(47) 시의원은 “국내 첫 건립된 왕건 세트장은 희소성이 있어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촬영장 인기가 시들해 시비 전액 부담은 낭비 소지가 많다”며 “양측이 50대 50으로 부담하지 않으면 의회가 승인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향후 촬영장을 4년간 KBS에 독점 사용케 하고 영남대로 1~3 관문을 촬영지로 허용하면 환경 훼손도 우려된다”며 집행부가 마련 중인 협약안에도 반대했다.

김윤기(57·사업)씨는 “시청료를 받는 공영방송이 가난한 자치단체에 촬영장 건설을 떠맡겨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4년 말 중부내륙고속도로 개통으로 새재를 찾는 관광객은 늘고 있지만 순수하게 촬영장을 찾는 관광객은 줄고 있는 추세”라며 시의 정확한 분석을 요구했다. 문경시민환경연대 박인국(54) 집행위원장은 “의회의 문제 제기가 타당성이 있다”며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 뒤 KBS와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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