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토양은 우리”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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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추협/“80년대 민주화투쟁의 소산”/여야로 나뉜 「중추」들 동지애 회복 강조
『문민정부는 80년 민주화운동의 소산』­ 『5·16의 경제개발 토양위에 개혁시대가 왔다』. 5·16 33주년이며 민추협 결성 10주년인 16일 양쪽의 주도세력들은 각각 기념식을 갖고 서로 다른 역사인식을 제기해 「문민정부 토양론」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양김씨 주도로 5공정권에 대항한 민추협은 개혁정권의 뿌리임을 자부하고 있다. 반면 5·16세력쪽에선 역사적 토양론을 경제치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민추협의 민주화세력들은 여야로 나뉘어 있고,역사의 다른 길을 걸었던 5·16세력과 개혁실세들은 동거하고 있어 논쟁을 더욱 미묘하게 만들고 있다.
민추협은 84년 김영삼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동교동계가 50대 50의 지분으로 결성했다. 5·16과 5·17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는 취지였다. 이들의 활동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6·29까지 이어졌다.
이때 참여했던 인사들은 현재 여야로 갈려 있다. 3당 통합과 14대 대선의 결과다.
그럼에도 이들은 아직 각각의 진영에서 중추다. 이들의 수중에 우리 정치가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은 『암흑같은 5공에서 민추협이야말로 민주화의 횃불이 됐다』고 주장한다. 특히 김 대통령측은 4·19­5·18­민주산악회­단식­민추협­신민당으로 이어지는 맥위에 지금의 정부가 서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바로 민추협으로 상징되는 80년대 민주화운동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자연 김종필 민자당 대표가 5·16의 의미를 새삼 강조하고 나서는데 대해 『시대착오적 행동』이라고 비웃는다.
이번 민추협 결성 10주년 기념행사에 김 이사장의 직계는 다소 소극적이다. 그러나 이는 최근 정국의 분위기와 행사의 주도권 때문이다. 민추협에 대한 평가가 달라서는 아니다.
16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기념 심포지엄과 리셉션이 잇따라 열렸다. 결성일은 84년 5월18일이었으나 올해는 이날이 불탄일임을 감안,이를 앞당긴 것이다. 「민추협­한국민주화운동의 현대사적 의미」가 심포지엄 주제. 이 자리에는 김상현 민주당 고문(당시 공동의장 권한대행)과 운영위원이었던 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최형우 내무장관 등 여야의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은 당시의 어려웠던 민주화투쟁을 회고하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민추정신의 계승발전」을 다짐하고 있다. 민자당의 민주계나 이번 행사에 적극적인 민주당 김 고문 등은 「동지애의 회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결성당시의 야권내부의 미묘한 역학관계를 연상케하는 대목이다.<김교준기자>
◎5·16세력/“경제발전이 민주화 밑거름”/JP식 역사해석에 청와대선 묵묵부답
김종필 민자당 대표는 16일 재단법인 「5·16민족상」 주최로 라마다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5·16 33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국립묘지의 고 박정희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단촐한 하루일정이었다. 김 대표는 즉석 연설을 했다. 그 내용은 지난 13일 여의도고교 학생들에게 『5·16후 60∼70년대 경제개발 성과의 토양위에 「개혁시대」가 온 것』이라고 한 강연과 같은 기조였다.
그의 「5·16 토양론」은 「선 경제발전 후 정치발전」 논리다. 김 대표는 『민주주의를 하려면 우선 경제력부터 갖춰야겠다는 생각에서 일어선게 5·16』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측근들은 『경제발전을 먼저 성공시킨 한국은 정치발전까지 갈 수 있었지만,필리핀처럼 정치발전에 우선 착수한 후진국은 민주화도 경제발전도 심한 차질을 경험했다』고 강조한다.
이는 박정희시대(기)로 출발해 5,6공을 거쳐(승) 문민정부를(전)으로 보는 그의 「기승전결」 역사관의 또다른 설명이다.
이는 김영삼대통령이 『쿠데타인 5·16은 우리 역사를 후퇴시킨 큰 시작이었다』(취임 1백일 기자회견)고 5·16을 전면 부정한 역사인식과 충돌한다. 그런점에서 한지붕 세가족으로 출발한 민자당은 모순되는 역사관의 「동거체제」라고 스스로를 말한다. JP의 발언을 『역사의 기만』이라고 성토하는 야당이 민자당의 정통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만 하다.
그러나 JP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있다.
청와대와 당내 대통령측근 출신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기승전결론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을 때와 다르다.
이를 두고 김 대통령이 JP의 「역사과정에 대한 개인적 사관」을 수용했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JP측근들은 김 대통령이 14일 스승의 날 수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2차대전후 유일하게 경제건설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신생국』이라고 강조한 대목에 고무받고 있다. 공화계 한 의원은 『경제는 고 박정희대통령의 치적이다. 김 대통령의 얘기속에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분리,평가하는 흐름이 있다』고 주장했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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