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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장 더러운 동물이라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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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18면

동물에겐 수세식 화장실도 없고 쓰레기통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얼굴을 씻거나 샤워를 하지도 않는다. 지저분한 우리에 갇혀서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동물이 깨끗하면 얼마나 깨끗하겠는가. 그에 비하면 다양한 위생도구를 갖추고 뽀드득 뽀드득 씻어대는 사람이 더 더럽다는 평가는 어딘가 잘못된 것 아닌가.
인간을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찰해보면 동물학자가 왜 더럽다고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몸은 깨끗이 닦지만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끊임없이 쓰레기차가 쓰레기를 싣고 어딘가로 달린다. 제 몸과 집은 닦을 줄 알지만, 그 바깥에 쓰레기로 성을 쌓아놓고 사는 것이 인간이다.
지금은 정부가 집 밖의 쓰레기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수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들이 쓰레기를 체계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공중보건과 위생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길거리의 쓰레기를 모아 처리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인구가 늘어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쓰레기의 양은 점점 더 늘어난다. 쓰레기를 적절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사람들이 사는 공간까지 뒤덮어 스스로를 위협하고 생태계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주일우의 과학문화 에세이-이미지에 걸린 과학 <14>

쓰레기는 늘어나고 묻을 곳은 없고
처음엔 쓰레기를 그저 모아서 한곳에 두는 것 이외에 다른 뾰족한 처리방법이 없었다. 한때 서울의 쓰레기를 모아두던 난지도에는 정말 별의별 물건이 뒤섞여 있었다.
1993년 난지도가 폐쇄된 이후 월드컵 경기장이 조성되면서 말쑥하게 탈바꿈했지만 그곳을 파보면 70, 80년대의 문화사를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자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커다란 섬을 쓰레기로 가득 채우는 데 15년가량 걸렸으니 새로이 쓰레기를 묻고 있는 김포매립지는 얼마나 갈까? 쓰레기는 늘어나고 묻을 곳은 없는 딜레마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호주같이 땅이 넓고 인구가 적다면 땅에 묻는 것이 쓰레기를 처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다. 설계가 잘된 쓰레기 매립장은 비교적 값이 싸고 위생적인 쓰레기 처리 방법이다.
쓰레기 매립의 가장 큰 문제는 침출수와 가스의 배출. 이들로 인해 지하수와 공기가 오염되면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된다. 요즈음은 매립지를 만들 때 점성이 있는 진흙이나 플라스틱을 덧대어 침출수를 막고 가스를 뽑아내는 관을 설치해 공기 오염을 막는 설비를 함께 한다. 뽑아낸 가스는 태워서 열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땅이 넓다고 하더라도 주변에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꺼리는 지역 주민들 때문에 점점 매립지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쓰레기 줄이고 다시 쓰는 게 최선책
미래학자 중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미래의 광산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이도 있다. 자원이 희귀해지고 폐자원을 적당한 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 쓰레기장을 다시 파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구덩이에 한 가지 종류의 쓰레기만 묻어 미래를 대비하는 곳도 있다.
그렇다고 땅이 좁은 나라에서 무작정 쓰레기를 묻을 수는 없다. 그 경우엔 쓰레기를 태우는 방법이 널리 사용된다. 태우는 열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다이옥신과 같은 유해 물질을 배출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다이옥신을 없애기 위해 고열로 처리하는 방법도 고안되었지만 이것도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섭씨 1000도에서 다이옥신은 분해되지만 더 높은 온도에서는 마찬가지로 유해한 질소산화물과 오존이 만들어진다. 이 물질도 완전히 분해할 수 있는 촉매 처리가 뒤따라야 한다.
쓰레기를 묻거나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개발되었지만 완벽한 처리 방법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쓰레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쓰레기를 줄이고 다시 사용하는 길밖에는 없다. 우리가 늘 하듯 종이나 빈 병 같은 것들을 따로 모아 다시 사용하는 방법도 있고, 쓰레기에서 자원이 될 만한 성분을 끄집어내 재생하는 법도 있다.
쓰레기를 줄인다는 의미에서 재활용은 장려되어야 하지만 그와 관련된 경제학은 조금 복잡하다. 새로운 자원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재활용 자원을 모으고 추리는 데 드는 비용이 더 큰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재활용 자원은 시장에 나왔을 때 자연에서 막 뽑아낸 자원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재활용 자원에 대한 정부 보조를 시행하는 나라도 있다. 물론 많은 경우에 자원을 재활용하는 편이 새로운 물질을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싸다.

자연을 닮자는 ‘산업생태학’
조금 더 적극적으로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인간의 활동과 산업구조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산업생태학’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생각은 자연에는 쓰레기가 없다는 데 착안되었다. 어떤 개체의 쓰레기가 다른 개체의 자원이 되는 고리를 가진 자연을 닮은 시스템으로 인간의 활동과 산업을 재편해야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규모에서 성공적인 시도도 있었다. 덴마크의 칼룬트보르(Kalundborg)
에서는 발전소·정유공장·제약공장·건축자재공장·효소공장, 그리고 쓰레기 회사 사이에서 부산물과 폐열을 유기적으로 나누어 쓰고 있다.
생태계가 지금과 같은 균형을 이루기 위해 보냈던 장구한 세월을 생각하면 산업생태계가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 많은 연구가 앞으로 더 많이 진전되어 인간이 더러운 동물이라는 오명을 벗을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쓰레기를 예술적 표현의 소재로 삼는 것이 이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요즈음 그런 전시가 많이 열리고 있다. 상암동의 자원순환테마전시관에서는 자원순환 조형물 공모전 출품작이 전시되고 있다. 정크아티스트 오대호의 작품은 남산 N서울타워, 성남시청, 그리고 청남대에 걸려 있다. 폐품이 보기에 좋은 물건들로 다시 탄생하는 것에 감탄하면서 작품을 보다 보면 버려지는 것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생각이 발전해서 아끼고 다시 쓰는 태도로 굳어진다면 쓰레기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예술가의 기발한 상상력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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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역사학,환경학을 공부한 주일우씨는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에 관심이 많은 과학평론가이자 문화공간 ‘사이’의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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