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상승기의 재테크 5억 넘는 ‘부자 통장’ 늘었다는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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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22면

재테크 도사라면 무릇 ‘삼색(三色) 주머니’를 잘 꿰차야 한다. 재산 보따리가 ‘주식·부동산·은행예금’ 등으로 짜임새 있어야 타율이 높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구멍 뚫린 보따리가 많아 투자자들이 골치 아프다.

먼저 용틀임을 하다 글로벌 신용위기 펀치에 휘청대는 증시가 그렇다. 휴식은 생각보다 길 듯하다. 미국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마저 “1998년 롱텀캐피털 파산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걱정하는 마당이다. 당시 뉴욕 증시가 회복하는 데만 4개월이 걸렸다. 불패신화를 낳았던 부동산 역시 안정세를 타고 겨울잠에 든 지 오래다. 강남 아파트 매매가격은 연초와 비교해 제자리다.

그러나 ‘수익의 꽃’은 본디 잡초를 먹고 자란다. 얼마 전까지 푸대접받던 금리 얘기다. 꼭 1년 전 4% 중반이었던 국고채(3년짜리) 금리는 5% 중반으로 높이뛰기했다. 특히 최근 한 달간 오름세가 눈에 띈다. 눈치 빠른 부자들은 이미 ‘이자 테크’에 뛰어들고 있다.

올 들어 주식형펀드의 수익률은 평균 37%에 이른다. 주머니가 불룩해진 투자자가 많다. 그런데 펀드로 돈이 밀물처럼 밀려든 최근 3개월간 수익률은 10% 안팎이다. 주가가 세게 조정을 받은 탓이다. 펀드는 푹 익혀야 제 수익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고수익에 현혹돼 한 박자 늦게 거금을 넣은 투자자들은 마냥 초조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지난주 내놓은 통계가 흥미롭다. 올 상반기에 저축성예금
계좌는 156만 개에서 65만 개로 반쪽이 됐다. 그런데 5억원 넘는 거액 계좌는 7만여 개로 3% 가까이 늘었다. 금액으로는 218조원으로 13조원 불었다. 올해 주식형펀드 증가액(34조원)에 비하면 적지만, 만만치 않은 돈이 예금으로 몰린 것이다. 한은은 “은행들이 대출 재원을 확보하려고 정기예금 특별판매 행사를 실시해 거액 자금을 빨아들였다”고 분석했다. 부자들이 기민하게 ‘이자 테크’에 나섰다는 얘기다. 펀드로는 홈런을 치고, 은행에서도 적시 안타를 날린 셈이다.

최근 가을바람이 불면서 분위기는 더 좋다. 알밤 같은 신상품이 줄을 잇고 있다. 솔로몬저축은행은 이달 초부터 최고 연 7.8% 이자를 주는 ‘인덱스플러스 정기적금’을 2000억원 한도로 팔고 있다. 주식과 예금을 결합한 퓨전 상품이다. 코스피지수가 내년 6월에 평균 3000이면 1.5%포인트를 얹어 7.8% 고리를 제공한다. 지수가 2100 이상이면 단계별로 6.4~7.3% 금리를 준다. 또 현대스위스·프라임 저축은행 등도 6% 중반 이자를 주는 상품을 특판하고 있다.

다만 저축은행은 과거 부실이나 대주주 전횡 등으로 문 닫은 곳이 많아 찜찜해하는 투자자가 많다. 저축은행중앙회 신호선 차장은 “일단 ‘8·8 클럽’에 가입했는지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은행 위험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알려주는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 비율 8% 이상이고, 고정 이하 부실여신 비율이 8% 아래여야 좋다는 얘기다. 1인당 원리금 5000만원까지만 돌려받으므로 거액을 투자하려면 가족 명의로 여러 저축은행에 분산투자하는 게 좋다.

요즘처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오름세라면 신한은행의 ‘탑스 CD연동 정기예금’도 눈여겨볼 만하다. 가입 시점의 3개월물 CD 금리가 5.3%라면 0.1%포인트(1년 만기)를 더해 5.4%를 준다. 석 달 후 CD 금리가 5.4%라면 0.1%포인트를 또 얹어 이율은 5.5%가 된다. 이렇게 만기까지 석 달에 한 번씩 금리가 바뀐다. 신한은행 상품개발실 구현수 과장은 “금리가 꾸준히 오를 때 유리하다”고 했다.

또 은행들은 요즘 ‘스윙(swing)’서비스를 화두로 자금유치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의 ‘Big Pot’통장이 대표적이다. 잔고가 고객이 지정한 한도를 넘으면 종합관리계좌(CMA)로 이체돼(연 4.7% 금리 적용) 주식투자에 활용할 수 있고, 거꾸로 카드 결제대금 등이 모자라면 CMA에서 통장으로 돈이 넘어오는 구조다. 우리은행·기업은행도 이런 상품을 팔고 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독특한 현상도 관찰된다. 금리가 조명을 받으면서 직접 채권 매매에 나서는 부자들도 늘고 있는 것이다.

동양종금증권 노평식 금융상품운용팀장은 “지난달 20일 개설된 ‘소매 채권시장’ 거래 금액이 하루 100억원가량 된다”며 “주식시장이 쉬는 틈을 타서 통화안정채권과 A등급 회사채를 거래하는 큰손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수익률도 환매조건부채권(RP)이나 증권사 CMA보다 좋아 연 5%대라고 한다. 채권은 금리가 다시 하락(가격 상승)하면 시세차익까지 챙길 수 있다. 지금까지 채권 거래는 주로 기관투자가 사이에서 이뤄졌고 금액도 100억원 단위여서 일반인들은 엄두를 못 냈다. 그러나 최근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자 증권선물거래소가 개인용 시장까지 새로 만들어 매매가 한결 손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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