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대입은 '로또 수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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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視界) 0'.

올해 고3이 되는 예비 수험생들은 28일 발표된 2005학년도 대입계획 자료를 접하고 "안개 속을 걷는 것 같다"며 속을 태웠다. 같은 대학 내에서도 모집단위별로 입시 계획이 사뭇 다른 데다 수험생들이 정작 궁금해하는 내용은 대학들이 아직 확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선 고교 진학지도 담당 교사들도 "종전 입시에 비해 갑절이나 복잡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 안에서 많은 수의 학생에게 개별적으로 진학 지도를 하는 일은 더이상 불가능하다는 교사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러다간 원하는 영역만 시험을 치르고, 잘하는 과목만 반영한다는 취지의 2005학년도 대입제도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헷갈리는 입시=예비 수험생 A군이 오는 12월 14일 받을 가상의 성적표로 네 개 대학에 지원하는 경우를 상정해 봤다.

A군의 사회탐구 영역 성적(4개 과목 선택) 2백69점이 대학마다, 모집단위마다 다르게 반영된다. 받은 점수의 25% 수준으로 줄어드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아직 전형 계획을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않은 대학도 있다.

경희대 등 19개대는 과학탐구를 응시하는 수험생에게 가산점을 준다는 계획은 이날 발표했지만 얼마를 줄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수험생들은 이런 기초적인 정보마저 제대로 알지 못한 상황에서 대입 준비를 해야 할 판이다.

◆'로또 수능'=대성학원 이영덕 평가실장은 "수험생들 사이에서 이번 수능은 '로또 수능'이 될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과학.직업 등 탐구 영역에서 수험생의 노력과 상관없이 어떤 과목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유.불리 현상이 확연히 나타난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12월 실시된 예비 수능 결과 운 좋게 '국사'를 선택한 학생이 '윤리'를 선택한 학생보다 표준점수에서 17점이나 높았다.

문제는 대학들이 이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이화여대 성태제 입학처장은 "운에 의해 합격.불합격이 갈려서는 안 되는 데도 대학들이 표준점수가 도입되는데 따른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교육 팽창=2005학년도 입시계획이 발표됨에 따라 각 학원이나 입시기관들은 "올 수능이 어려워진다" "맞춤식 정보를 제공한다"며 '수험생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학교에서 해줄 수 없는 진로 지도를 대신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2002학년도 대입 이후 일선 학교는 학원이 만든 배치표와 입시자료가 없으면 개별 지도를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갈수록 대입 제도가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C여고 金모 교사는 "새 입시제도로 학생들의 사교육 의존도가 더 높아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강홍준.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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