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팔 안으로 굽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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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가령 어떤 방송이 뉴스 끝에다 으레 토를 달기를,한국인은 자기네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얻는다고 말한다 치자.그럴 경우 나 같은 시청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나 역시 한국인임이 분명하지만 나에게는 유감스럽게도 그 방송 뉴스를 통해가장 중요한 정보를 얻은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신문이 정론지 임을 내세우면서 자기네가 벌이는 행사의 공익성이나 자기네 출판물의 탁월성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고 치자.그럴 경우 나 같은 독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것이다.마치 수양딸로 며느리 삼듯이 독자들을 손쉽게 설득할수 있다는 발상은 결코 독자들에 대한 인격적 대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출판사에서 자기네 책을 가리켜 마치 한국의출판 수준을 서너단계쯤 끌어올린 최고의 양서이며 전국민 필독의베스트셀러인 양 떠들썩하게 선전했다고 치자,가령 내가 정색을 하고 내 작품에 청진기를 대는 척하면서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이라는 자가진단을 내렸다고 치자.이처럼 확인된 적도 없고 객관적인 검증 절차를 거친 적도 없는 이야기를 예사로 늘어놓는 무책임한 광고 앞에서 우리의 양식있는 독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조작이나 허풍이 문화계 전반에 만연해있다.일반 상행위처럼 문화의 유통에서도 허위 및 과장 광고를 규제하는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적용할 단계에 와 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문화의 생산자들이 남발하는 부정직한 관행에 속고 속은 문화의소비자들이 어느날 일제히 들고일어나 문화 자체에 대한 불매운동이라도 벌이게 될까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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