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통반란으로 高物價극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일본 전자업체들은 지난해 11월 1천5백여개 품목에 대한 권장 소비자 가격표시를 중단했다.
전국의 할인매장(디스카운트 스토어)이 정가의 60% 정도로 물건을 팔고 있는 현실에서 표시가격의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역시 유통단계별로 권장가를 지정해오던 식품회사 아지노모토도지난 4월부터 1차도매상에 대한 공급가격만 표시,사실상 유통단계별 권장가격을 없앴다.
얼마전에는 맥주에 붙이는 일본 정부의 주세가 인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슈퍼마켓의 맥주 값은 오히려 내리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값싸고 품질 좋은 외국산 맥주들과 경쟁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높은 경제수준에 걸맞지 않게 낙후돼있던 일본 유통산업이 「슘페터적 변화」를 겪고 있는 진통의 현장들이다.
「신가격혁명」「소비자혁명」으로 불리는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경제불황과 1달러당 1백엔에 육박하는 엔高다.
물가가 OECD국가 평균에 비해 80%이상 비싸 「경제는 大國,생활은 貧國」이라 자조하던 일본의 소비자들이 마침내 실질적인 효용을 추구하는 일대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가격하락추세는 필연적으로 일본유통업계의 구조 변화를 재촉하고있다. 대량주문으로 원가를 줄이고 인건비등의 간접비용도 최소화해 소비자에게 값싸게 판매하는 할인매장이 급속히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4조3천억원에 달하는 주류시장의 경우 3~4년 전만해도 미미했던 할인매장의 점유율이 이미 10%를 넘어섰다.할인매장은 기존 소매업계의 견제와 세수감소를 꺼리는 세무당국의 「눈치」속에서도 의류.식품.주류.화장품 등으로 급속히 확산돼 1천1백만명이 종사하고 있는 일본유통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수입품의 일본 시장 점유율은 의류등 비내구재의 경우 85년에서 93년 사이 7.1%에서 17.3%로,내구소비재의 경우는 1.6%에서 7.3%로 급증했다.
일본유통업체들은 다투어 오렌지주스.아이스크림.세제.필름 등을수입,자체상표(PB)를 붙인 후 국내제품의 50~70%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전자업체들이 해외 현지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도 국내시장에 역수입되어 가격하락에 기여하고 있다.히타치는 올해 현지생산한 TV반입량을 1.5배 늘렸고 샤프가 반입한 VTR는 2.1배 증가했다. 고물가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일본 소비자들의 반란이 수입개방과 유통산업의 혁명으로 귀결되고 있는 일본의 현재진행형은 농안법 파동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좋은 교훈이 된다.
〈羅賢哲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