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학계서 슬슬 불거져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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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 대통령 강력 부인,민자선 문제점 제기/민주선 “깊숙한 교감있지 않았나”에 촉각
대통령 자문기구인 21세기위원회(위원장 이상우)가 개헌론을 제기하고,한 연구단체의 심포지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되는 등 개헌논의가 학계에서부터 서서히 제기되고 있다.
21세기위는 10일 김영삼대통령에게 국가장기정책을 보고하면서 『96년에 있을 총선을 전후해 권력구조·정계개편과 관련된 개헌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대한 준비와 검토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우선 개헌이 추진될 경우 가장 핵심 주체가 될 청와대의 반응부터 살펴보면 『김 대통령의 임기중 개헌은 없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11일 오전 주돈식대변인에게 즉각 전화를 걸어 자신의 임기중 여하한 개헌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공식 발표토록 지시했다.
주 대변인은 『김 대통령이 「임기중 개헌을 안하겠다는 의지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고 해명했다.
주 대변인은 『김 대통령이 21세기위의 보고때 이 민감한 개헌문제를 들었으면 즉각 반응했을 것』이라며 『김 대통령은 이날 아침 신문을 볼때 처음에는 개헌 관련기사가 일본의 얘기인줄 알았다가 다른 신문에서 한국의 개헌론인 것을 발견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 위원장이 김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은 5권(1천4백쪽)으로 된 「21세기의 한국」을 요약한 30여쪽에 불과했으며 이 요약본에는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자들의 구상을 정부의 입장이나 견해로 확대해석 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을 종합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간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을 비롯,여권 핵심에서는 권력구조·대통령임기 등에 관한 현행 헌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소리가 적잖이 나왔기 때문이다.
정계개편 불가피론도 마찬가지다.
한 민주계의 핵심 측근은 사석에서 『김 대통령은 후계를 구상하면서 내각제를 포함한 권력구조의 개편문제까지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면서 『15대 국회의원선거를 전후하여 이러한 문제가 표면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측근은 개헌을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따라서 향후 김대중씨나 이기택 민주당 대표의 정치권에서의 위상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여야는 21세기위의 청와대 보고와 나라정책연 심포지엄에서 개헌론이 제기되자 『배경이 뭐냐』 『신호탄이냐』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각자 입장에 따라 긍정과 부정 등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자당은 『김 대통령 임기내에 개헌은 절대 안한다』는 청와대 발표내용이 당론임을 재확인하면서 공식적으론 논의의 확산을 진화하려는 입장.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여야 정파가 모두 내심 내각제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게 사실』이라며 논의가 공개된 것을 은근히 환영하기도 한다.
민주당도 당차원에서는 개헌시비에 휘말릴 경우 상무대 문제 국정조사 등 현안에 대한 관심이 흐려질지 모른다고 보고 공식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
문정수 민자당 사무총장은 『대통령이 이미 선언한대로 개헌은 절대 없다. 따라서 개헌논란도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민정계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면서도 『양김과 같은 뚜렷한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내각제는 매우 관심을 끄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며 환영.
민주당 의원들은 개헌문제가 여권과의 교감아래 제기된 것 아니냐고 의심하면서 못마땅해하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조세형 최고위원은 『냄새가 난다. 5년 단임제가 있는데 개헌얘기가 나오는 것은 정권연장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했고,한광옥 최고위원은 『여당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말했다.<김현일·이상일기자>
◎개헌관련 학자견해/통일한국 장래까지 고려 마땅/갈등 흡수할 내각제등 강구를
◇21세기위 보고=96년 총선을 전후하여 권력구조 및 정계개편과 관련된 개헌문제가 다시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권력구조에 대한 논쟁은 내각제를 채택하느냐,현 대통령책임제를 고수하느냐가 주된 관심사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경우에도 현행 5년 단임제가 과연 21세기를 앞두고 타당한가 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5년의 경험에서 볼때 대통령의 5년 단임제는 그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채 임기말의 권위 약화와 권력누수 등 결함만 노출되었다는 지적들이 있다.
물론 연임제로 돌아설 수도 있고,내각책임제 개헌을 감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제는 다같이 장·단점이 있어 어느 편을 택함이 좋은가를 잘라 말하기 힘들다.
진정한 민주화 정착과 통일한국의 장래까지 고려하는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
◇나라정책연 심포지엄(12일 예정) ▲양건교수(한양대)=통일한국의 권력구조는 정치·사회적 갈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내각제나 이원정부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통일이 도래하기 전에 갈등을 제도적으로 흡수하는 내각제의 국정운영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권한 약화라고 볼지 모르나 일상의 정치를 국무총리에게 맡김으로써 대통령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최한수교수(건국대)=우리 대통령제하에 집권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면 의회는 장식물이 되고,여소야대가 되면 국정운영이 마비된다.
앞으로 선거일정과 관려해볼 때 현재의 대통령은 레임덕이 1년 차이지만 15대는 2년,16대는 3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대통령의 임기,국무총리의 역할조정·부통령제 신설,감사원 위상 재정립 등 헌법상의 권력구조를 재검토·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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