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교육부가 특목고 흔드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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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특목고 설립 권한은 교육부 장관이 16개 시·도 교육감에게 이양한 지 오래다. 그런데 지난 5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 특목고를 설립하려면 교육감이 교육부 장관과 협의토록 했다. 9월 6일 교육부 차관은 시·도 부교육감 회의에서 “특목고 설립을 위한 협의 요청을 하지 말라”고 아예 특목고 신설 원천 봉쇄를 선언했다.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 있는 인재양성을 위한 특목고를 교육정책 실패의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세계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 특목고가 본래의 설립 목적에서 벗어나 대입 위주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고 교육부가 비난하고 나선 것은 교육부 스스로가 지도 감독을 소홀히 해 왔다는 고백이다. 교육부의 주장대로라면 특목고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입시준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아예 대학에 진학하지 말거나, 대학에 진학하고 싶으면 학교 밖에서 입시준비를 하라는 주문이 아닌가? 교육부가 나서서 공교육을 허무는 꼴이다.

 교육부의 이중적인 잣대도 문제다. 전문계(옛 실업계) 고교의 설립목적은 고교에서 실업교육을 받고 전문분야에 취업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전문계 고교가 진학반을 운영해도 문제 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대입 수능과목에 직업탐구 과목을 도입해 전문계 고교생들의 대학진학에 혜택을 주고 있다. 전문계 고교 졸업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권리가 있듯이 외고와 과학고·국제고 졸업생들도 동등한 권리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교육부의 특목고 신설 금지령은 노무현 정부의 기본 정책기조인 지방화·분권화·지역균형발전정책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교육부가 교육감이 특목고 설립에 관한 협의조차 못하게 지방분권을 흔들고 있는데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침묵하고 있다.

 국제고는 현재 부산과 경기도에만 1개교씩 있고, 내년 서울에 1개교가 개교 예정일 뿐 나머지 13개 시·도에는 없다. 16개 시·도 중 광주·울산·강원·충남 등 4개 지역에는 외국어고가 전혀 없다. 이렇듯 지역 간 불균형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소외지역이 특목고를 신설하려는 노력을 교육부가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데도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일언반구도 없다.

 소외지역을 현 상태로 고착화하는 것이 국가균형발전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특히 2010년부터는 외고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학생이 거주하는 광역시·도로 제한하는 것이 교육부의 방침이라면 당연히 외고가 없는 지역에 신설을 허가하는 것이 국가균형발전의 길이 아닌가?

 교육부가 왜 대선판에 이처럼 이슈 만들기에 나섰을까? 대통령 선거는 정권을 연장하려는 세력과 정권을 교체하려는 세력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결판이 난다. 한국의 교육 문제를 두고 정권교체 세력은 경쟁력 있는 인재양성을 위해 대학의 자율과 경쟁, 고교교육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특목고 확충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권연장 세력은 그 반대 입장에 있다.

 대선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교육부가 정권교체 세력이 주장하고 있는 대학의 자율권 행사에 대한 제재를 공언하고 있고, 또한 특목고 신설을 가로막고 나선 것은 정권연장 세력을 돕기 위해 이슈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대통령 선거에서 중립을 지키는 일은 법무부만의 일이 아니다. 정부 모든 부처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 교육부도 예외일 수 없다.

권대봉 고려대 교수·교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