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영화] 천진한 사랑, 전장에 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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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로베르토 베니니
장르: 로맨틱 드라마
등급:12세 이상 관람가

 도대체 그의 부산함과 허풍, 호들갑스러움은 미워할 수 없다. 턱없는 낙관과 작정한 천진함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유는 없다. 오직 그가 베니니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아름다워’(1997)에서 유대인 수용소에 함께 갇힌 어린 아들에게 “우리는 놀이를 하는 중”이라고 거짓말하던 아버지였다. 술래에게 들키지 않으려 꼭꼭 숨어 있던 아들이 대학살이 끝난 수용소 마당으로 걸어나오는 엔딩. 로베르토 베니니는 여기에 ‘인생은 아름다워’란 제목을 붙였다. 그가 감독·주연한 ‘호랑이와 눈’은 ‘인생은 아름다워’를 잇는 영화다. 이번에는 부자가 아니라 중년 남녀의 사랑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이라크전이 배경이다. 아들에게 수용소 생활을 숨바꼭질 놀이라고 속이는 대신 혼수상태에 빠진 여인을 지극정성으로, 물론 얼토당토 않은 방법으로 간호해 살려낸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현실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적이다. 사랑만이 절망적인 현실을 이긴다는, 베니니식 우화이자 처방이다.

 시인 아틸리오(로베르토 베니니)는 매사 실수투성이지만 특유의 낙천성으로 주변을 즐겁게 한다. 매일 밤 꿈에서 한 여인과 결혼하는데, 친구인 이라크 시인 푸와드(장 르노)의 강연장에서 그녀 비토리아(니콜레타 브라스키)를 만난다. 푸와드와 함께 이라크로 간 비토리아가 부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은 아틸리오는 바그다드로 떠난다. 미군에게 테러범으로 오인받기도 하고 지뢰밭에 뛰어드는 해프닝을 벌이며 우왕좌왕, 혼신의 간병을 시작한다.

 ‘피노키오’(2002)의 실패 이후 베니니의 절치부심이 느껴지는 영화다. ‘인생은 아름다워’ 팀이 다시 뭉쳤다. 베니니의 실제 부인인 니콜레타 브라스키가 상대 역이자 제작자로 참여했다. 오랜 파트너인 시나리오 작가 빈센조 세라미, 영화음악가 니콜라 피오바니도 가세했다. 아틸리오의 꿈 속 결혼식에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You can never hold back spring’을 들려주는 이는 명 뮤지션 톰 웨이츠다. 클로즈업되는 하객 얼굴들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시인 얼굴을 합성한 것이다.

 제목 ‘호랑이와 눈’은 ‘로마에 눈이 내리고 호랑이가 나타나면 사랑을 받아주겠다’는 비토리아의 말에서 따온 것. 아틸리오의 간호 사실을 모른 채 깨어난 비토리아가 로마로 돌아오자 환상처럼 눈이 내리고 호랑이가 어슬렁거린다. 바그다드 하늘의 포탄이 마치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처럼 보이는 장면도 비슷하다. 베니니다운 동화적 판타지. 13일 개봉.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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