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하타/“나가노 망언 하타 신정부의 본심 아닌가” 의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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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각 장악력 아시아권 신뢰 안팎서 의문 제기/자민·사회당서 합동공격/“호소카와와는 색깔달라”
나가노 시게토(영야무문) 일본 법무상은 결국 과거사 관련 망언으로 물러났다.
나가노 망언은 대외적으로 일정부에 신뢰손상이라는 쉽게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대내적으로는 소수여당인 하타 쓰토무(우전자) 내각에 뼈아픈 정치적 타격을 주었다. 하타 총리는 나가노를 법무상으로 임명한데 대한 비판을 면할 길이 없게 됐다.
한때 우군이었던 사회당도 자민당과 함께 보수 우경화한 신생당 주도의 하타 내각에 대결자세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여 소수여당 정권인 하타 내각은 국회운영이 더욱 어렵게 됐다.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사회당 위원장은 나가노 법무상의 발언이외에도 북한 핵문제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하타 내각내 각료사이에서 「집단적 자위권」과 「유사시 입법」 용인 등의 견해가 분출하고 있는 것과 관련,『호소카와 정권을 계승했지만 전혀 본질이 다른 정권이 됐다』고 비판했다. 사회당은 나가노 법무상의 발언이 개인적인 발언이라기 보다 여당내 최대세력인 신생당의 정치자세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 나가노 법무상의 망언은 연립여당내 결속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신생당과 함께 하타 내각을 받쳐주는 이치가와 유이치(시천웅일) 공명당 서기장도 6일 『법무상의 발언철회는 당연하다. 그러나 이로써 각료의 책임이 면책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며 그의 사임을 촉구했다.
나가노 법무상이 사임할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배경은 일본 국내여론이 그의 망언 철회만으로 만족하지 않은 탓이다.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그는 사퇴의 길을 밟지 않을 수 없었다. 하타 정권에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주자는 배려다.
특히 한국과 중국 등 주변 관련국들은 그의 망언이 하타 정부의 속마음(본음)이라고 보고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해외의 이런 반발은 쉽사리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사회당 등 일본내 야당들이 그의 사임을 요구하며 다음주초 재개될 통상국회에서 치열한 정치적 공세를 펼 것을 다짐,그를 사임으로 몰고갔다.
오히려 하타 정권의 실책을 물실호기로 삼고 공세를 펴야 할 자민당이 정작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자민당내에는 나가노 법무상과 견해를 같이하는 보수파들이 많기 때문이다.
모리 요시로(삼희랑) 자민당 간사장은 『법무상 발언은 경솔했다』는 담화만 발표,법무상의 사퇴까지는 요구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소송으로 2차대전을 「침략전쟁」이라고 규정한 호소카와 정권을 계승해 취임초 「(과거에 대한)솔직한 반성」을 강조했던 하타 총리는 각료에 대한 지도력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 이 사건으로 빚어진 아시아권의 신뢰를 회복하는데도 상당한 기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됐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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