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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의 여자' 못 거른 청와대 검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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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와대 문재인 비서실장(右)과 전해철 민정수석이 11일 기자회견이 열리는 춘추관 입구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파문으로 청와대가 휘청이고 있다.

변 전 실장의 거짓말이 드러난 지 하루 만인 11일 노무현 대통령이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진화를 시도했지만 불길은 청와대 참모 인책론과 국정조사.특검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공직 기강 검증 시스템을 맡은 민정수석과 참모 라인 전반이 도마에 올랐다.

12일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전해철 민정수석은 청와대 비서실 내부 회의에서 "대통령에게 누를 끼쳤다. 책임지고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문책을 거론할 때가 아니다"고 만류했다고 한다. 최종 사표 처리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인 10월 중순께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내부 문책론에 대해 "저를 포함해 개인적으로 (거취와 관련해) 여러 생각이 있다"며 "하지만 진실의 윤곽이 좀 더 드러난 뒤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검증 기능이 마비돼 대형 사고로 이어진 건 노무현 정부 들어 이번이 두 번째다. 2005년 1월 노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서울대 총장 시절 판공비 유용, 사외이사 겸직 등의 문제로 중도 하차한 이기준씨를 교육부총리로 임명한 데 대해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임명한 지 닷새 만에 사표를 수리했다. 당시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을 견디지 못해 박정규 민정, 정찬용 인사수석이 물러났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사안의 경중을 따져볼 때 변 전 실장 파문이 훨씬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내부 검증 시스템이 전혀 제 기능을 못했기 때문이다. 8월 24일 언론 보도를 통해 변 전 실장 관련 의혹이 처음 불거진 뒤 보름이 지나도록 비서실은 "아니다"고 말하는 변 전 실장의 입만 쳐다본 꼴이 됐다. 이는 노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깜도 안 되는 의혹"이라고 큰소리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변 전 실장은 청와대가 법무부 장관에게서 검찰 수사 내용을 통보받은 9일 민정수석실 내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들이 신정아씨와의 관계를 물어봤을 때도 처음에는 부인했다고 한다. 검찰이 신씨 집에서 압수한 물품 목록을 거론하자 변 전 실장은 그제야 사실관계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검찰 조사가 아니었다면 청와대는 여전히 "깜도 안 된다"며 언론과 야당을 공격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취임 초부터 시스템에 의한 국정 운영을 강조해 온 청와대로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민정수석실은 "수사권이 없어 한계가 있다"고 뒤늦게 변명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민정수석실의 자세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지난해 초 청와대는 내부 검증 과정에서 음주운전 경력을 문제 삼아 외교부 고위 공직자를 승진에서 제외시킨 일이 있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청와대의 잣대가 외부에는 가혹하고 제 식구들에게는 관대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임기 말로 갈수록 거세지는 외부의 공격에 맞서 '코드 맞는 인사'끼리 똘똘 뭉치는 상황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요즘 청와대를 보면 사람과 시스템 양쪽에 모두 이상이 발생한 것 같다"며 "내부 검증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하면 임기 말에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노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11일 청와대 관저에서 변 전 실장의 부인 박미애씨와 오찬을 함께했다.

천호선 대변인은 12일 "권 여사가 어제 변 전 실장 부인과 오찬을 했다"며 "(변 전 실장이 '신정아 파문' 연루 의혹으로 낙마한 데 대해) 변 전 실장의 부인이 힘들어할 것 같아 위로하는 차원에서 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찬에는 권 여사와 박씨만 함께했고, 노 대통령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승희 기자 <pmaster@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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