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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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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어제 교육감들은 전국의 모든 중학교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기로 하고, 이에 소요될 예산을 협의했다.

교육감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교육감협의회장인 서울시 공정택 교육감은 “중학교가 학력뿐만 아니라 인성교육의 사각지대다. 초등학교나 고등학교에 비해 중학교 학생들이 가장 공부도 안 하고, 선생님 말씀도 안 듣는다. 중학교를 이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모든 교육감들의 공통된 견해다”고 말했다. 부산시 설동근 교육감도 이에 동조하면서 “학력평가 결과를 엄밀히 분석,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행정·재정적인 지원방안을 수립해 중학교를 바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미국·영국·일본 등 세계 각국은 오래전부터 초·중·고등학교에서 학력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평가를 통해 정부와 교육청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 교장과 교사들은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고 있는지, 학력이 낮은 학교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등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파악한다. 이를 토대로 교육청은 학생들의 학력 향상을 위해 여러 가지 행정·재정적 지원을 한다.

세계 각국은 학력이 곧 국력이라는 점에서 학생들의 학력관리를 교육당국의 가장 중요한 업무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기 자녀의 점수에는 그토록 민감하면서도 사회적으로는 “그까짓 공부 좀 잘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하면서 학력을 소홀히 한다. 일반인들과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 가운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교육 당국도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고 있는데도 이제까지는 그저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해 왔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다. 초등학교는 최근 10여 년 동안 학교 건물과 시설은 물론이고, 교육 내용과 방법들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 개선됐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대학입시 때문에라도 열심히 공부한다. 중학교 학생들은 공부를 안 한다. 교사나 학부모들도 내버려 둔다. 그야말로 우리 교육의 사각지대다. 뒤늦게나마 전국의 교육감들이 중학교 학생들의 학력 저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일부 교원단체가 우려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학생들이 학업성취도 평가를 준비하기 위해 학원에 몰려가는 일이 없도록 적어도 초창기에는 기초학업능력만을 평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학업평가 결과를 섣불리 공개해 학부모와 학생들이 특정 학교를 기피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하는 일도 필요하다. 나아가 학업성취도 평가와 함께 학생들의 학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변인(變因)들을 조사하고, 지원해 학력이 낮은 학교를 끌어올려야 한다.

이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무너져 가던 중학교가 하루아침에 바로 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중학교가 공부하는 곳으로 바뀌어 가고 학생들의 학력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감들의 교육에 대한 염려와 애정이 좋은 결실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정진곤 한양대 교수·사회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