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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스포츠 외교관 기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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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내에서는 비인기 종목이라 늘 팬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고, 올림픽에서는 덩치 큰 유럽 선수들에게 나동그라지기 일쑤다. 그래도 잘도 싸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에서 여자선수들이 거구의 덴마크 선수들을 상대로 펼친 눈물 투혼은 아직도 감동으로 남아 있다. 아쉽게 은매달을 땄지만 팬들로부터 가장 값진 메달이란 찬사를 받았다.

그런 핸드볼이 요즘 중동 심판들의 조직적인 편파판정에 멍들고 있다. 지난주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 남자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중동 심판들의 후안무치한 ‘거꾸로’ 판정으로 베이징올림픽 출전권 확보에 실패했다. 내년 5월 세계대회에 나가 예선을 다시 치러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아시아핸드볼연맹을 떡 주무르듯 요리하고 있는 쿠웨이트인 회장 때문이다. 세계연맹도 중동권의 지원으로 당선된 이집트인이 회장을 맡고 있어 제소할 곳도 마땅치 않다. 오죽하면 핸드볼인들이 주한 쿠웨이트 대사관까지 찾아가 항의시위를 벌이겠는가. 지난해 카타르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은 중동 심판들의 농간으로 두 수 아래인 카타르에 져 노메달에 그쳤다. 하도 억울해 당시 박도헌 감독은 해당 심판을 밀치고 의자를 걷어차기까지 했다. 아시아 핸드볼 최강국인 한국이 이런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이 심판 판정 때문에 손해보지는 않았다. 김종하 대한핸드볼협회 회장겸 아시아연맹 부회장이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어서 든든한 방어막이 됐다. 그러나 김 회장이 현장에서 떠난 지금 아시아 핸드볼은 중동권의 손아귀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

 체조도 사정은 비슷하다. 아테네올림픽에서 양태영은 만점 연기를 펼치고도 어처구니없는 오심(?) 탓에 금메달을 도둑맞다시피 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텃세가 심한 유럽 심판들의 견제를 뚫고 메달을 따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중국이나 일본 체조는 심판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드물다. 심판들에 대한 영향력이 절대적인 국제체조연맹 기술위원회에 자국인들을 포진시켜 놓고 있기 때문이다. 70년 역사의 한국체조는 아직 기술위원 한 명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에서 제1 덕목은 경기력이지만, 외교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기력은 허약하다. 평창이 2014년 겨울올림픽 개최권을 러시아 소치에 뺏긴 것은 푸틴 대통령의 드라이브 탓도 있지만 역량 있는 스포츠 외교관의 부재도 큰 원인이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대로 대구가 2011년 세계육상 개최권을 따낸 것은 대구시와 시민들의 철저한 준비 못지않게 박정기란 인물이 있기에 가능했다. 유엔보다 많은 212개 회원국을 거느린 국제육상연맹(IAAF)의 28명 집행이사 중에서도 박정기씨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이다.

박정기씨는 최근 “내가 나이를 더 먹기 전에 뒤를 이을 후배가 빨리 나와야 할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얼마 전엔 박용성 국제유도연맹 회장 겸 IOC위원이 유럽연맹의 조직적인 방해로 물러났다. 한국 유도의 위상을 크게 끌어올린 또 한 사람이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제 한국은 이건희 IOC위원 한 명만이 남았다.

벌써부터 내년 올림픽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베테랑 스포츠 외교관들이 하나 둘 떠나고 있지만 뒤를 이을 인물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정부도 유능한 스포츠 외교관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넘어 2018년 세 번째 도전을 외친 평창을 위해서라도.

신동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