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영국문화원 산 증인' 송재실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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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우리 문화원의 주 이용객은 대학교수나 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영국으로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떠나는 학생과 젊은 회사원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지요. 연간 이용객도 몇천명 수준에서 지금은 7만명을 웃돌고 있습니다. 세계화 시대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1973년 주한 영국문화원 개원과 함께 관용차 운전기사로 입사해 31년을 근무하고 오는 8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송재실(宋在實.60)씨. 영국대사관 사무실 한 귀퉁이를 빌려 업무를 개시했을 때부터 세번의 이사를 거쳐 이달 초 현재의 서울 신문로 건물로 이전할 때까지, 강산이 세번 변하는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그는 영국문화원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메이저 총리 같은 분이 방한했을 때는 정부차원에서 의전을 맡는 바람에 제가 모실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명 학자나 예술인들은 대부분 제가 안내했지요. 그 가운데 영장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제인 구달 박사나 발레리나 고(故) 마곳 폰테인과 같은 분들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

宋씨는 30년 근무를 통해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2000년 1월 영국정부로부터 훈장(MBE.Member of British Empire)을 받은 것을 꼽는다. 그는 이 훈장이 비틀스가 받았던 것과 같은 급이며, 한국인으로 이 훈장을 받은 사람은 고(故)김상만 동아일보 회장을 포함해 열명이 채 안된다고 자랑했다.

그는 또 이 훈장 덕분에 매년 영국대사관에서 열리는 여왕 생일파티에 꼭 초청받는다고 말했다.

宋씨는 주(駐)인도 영국문화원장을 끝으로 퇴임한 톰 화이트 초대 원장과는 수시로 국제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며, 1970년대 2등 서기관으로 첫 부임한 이래 세번째로 한국 근무를 하고 있는 워릭 모리스 영국대사와도 가까운 사이라고 했다.

영국인과 미국인을 쉽게 구분해내며, '베리 굿 (very good)' 대신 '졸리 굿(jolly good)'이란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영국통이 된 宋씨지만 그는 아직까지 한번도 영국에 가보지 못했다. 한번은 문화원장에게 "장기근속했는데 한번 정도는 영국에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미스터 宋은 영국을 많이 알고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니까 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더라며 껄껄 웃었다.

宋씨가 모는 차는 국산이다. 영국문화원은 초기에는 본국에서 랜드로버를 들여와 관용차로 사용했으나 80년대 이후에는 한국에서 생산하는 대형 승용차를 이용하고 있다.

宋씨의 연봉은 3천만원. 근속기간에 비해 많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다. 그러나 宋씨는 "'사오정' '오륙도' 세태에서 환갑 때까지 일할 수 있는데다 주 5일 근무, 연가(年假) 20일, 정확한 출퇴근 시각 등의 근무여건까지 감안한다면 불평할 정도는 아니다"며 미소를 지었다.

충남 대천이 고향인 宋씨는 서울에서 고교를 마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제대한 뒤에는 과수원에서 5년간 막노동을 했다. 그리고 69년 운전면허를 따 택시를 몰았던 것이 인연이 돼 영국문화원에 입사했다. 군 복무 시절 미군과 함께 생활하면서 익힌 어설픈 회화실력이 입사 때 큰 도움이 됐다고. 부인 태평순(太平順.57)씨와 2녀1남을 두고 있는 宋씨는 퇴직 한 뒤에는 강원도 쪽에 사둔 조그만 땅에 과실수를 심고 기르면서 노후를 보내겠다고 말했다.

김세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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