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업체 온라인 설문 발표 '약발받네'

중앙일보

입력

‘결혼 상대자가 말한 거짓 정보 가운데 최악의 것은?’

7일 언론 매체들은 결혼 정보업체인 ‘비에나래’와 재혼 정보업체인 ‘온리-유’의 설문조사 결과를 실었다. 특히 남성 응답자가 주로 여성의 과거를 문제 삼은 반면 여성은 남성의 연봉이나 직업을 우선시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결혼 상대자가 말한 거짓 정보 가운데 최악의 것’을 물은 설문조사 결과 남성 응답자의 62%가 결혼 상대자의 문란한 이성 관계라고 답했고, 여성은 35%가 연봉이나 직업이라고 응답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를 이어 남성은 빚(17%)과 학력(6%)을, 여성은 악습ㆍ성격(13%)을 꼽았다. 이 결과만 놓고 보자면, 여성은 결혼 상대자가 좋은 직업을 갖고 돈만 많이 벌어다 주면 군소리를 안 하는 존재다. 남성 역시 상대방의 과거만 깨끗하면 괜찮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런가?

함께 소개된 조사 결과는 한 술 더 뜬다. 결혼 상대자가 이런 문제에 관해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날 경우 어떻게 하느냐 하는 질문이다. 남성의 55%, 여성의 67.5%가 헤어진다고 응답했다. 일부 언론은 신세대들의 이별관ㆍ이혼관을 잘 보여주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은 이 결혼 정보업체의 해석을 그대로 인용해 ‘헤어지겠다는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높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적고 있다. 정말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파혼하려 들까? 과연 그럴까?

최근 들어 언론들이 결혼 정보업체와 취업정보 사이트의 설문조사 결과를 '여론조사'라며 보도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런 조사 결과들은 하나같이 흥미롭다. 주제도 시의적절하고, 결과도 늘 여론의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러나 조사 결과가 일반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당장 최근 언론이 보도한 결혼 정보업체 ㈜해피의 결혼 적령기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남성은 절반 가까이 33~35세를 꼽았고, 여성은 절반 이상이 30~33세를 꼽았다. 결혼 적령기를 늦추는 세태를 잘 보여주긴 하지만, 실제보다는 조금 더 늦게 잡은 응답이 많았다. 취업정보 사이트인 잡코리아가 구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인턴 계획도 비슷하다. 구직자의 73%가 월급 없이도 인턴을 할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절박한 구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는 하나, 정말 10명 가운데 7명이 돈 안 받고 일 하겠다고 나설지는 의문이다.

결혼과 취업 정보업체의 설문조사 결과가 늘 흥미롭지만 석연치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와 같은 엄격한 여론조사 방법론을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엄밀한 의미에서 결혼과 취업 정보업체의 조사결과는 ‘여론’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해당 회사 온라인 회원들의 의견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우선, 표본 집단에 문제가 있다. 보통 설문 혹은 여론조사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인구통계학적 특징을 반영해, 200명 이상으로 구성한다. 그런데 결혼과 취업 정보업체들은 해당 회사 홈페이지의 한 코너에서 조사를 실시한다. 보통 해당 회사 온라인 회원들이 참여하지만, 비회원인 경우도 참여하기가 어렵지 않다. 물론 e-메일을 통해 조사를 보완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회원에 한정된다. 결국 이들 업체들의 설문조사 결과는 회원이거나 장난기가 발동한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나온다. 우리 국민의 전반적 정서나 의견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더 큰 문제는 질문 항목의 보기다. 엄밀한 설문·여론조사에서는 보기 항목을 아무렇게나 설정하지 않는다. 척도(scale)나 수준을 동일하게 한다. 반면 결혼 및 취업 정보업체의 경우는 흥미로운 답변 위주로 배열할 뿐만 아니라 다분히 특정 보기를 선택하도록 유인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한 결혼 정보업체가 실시 중인 설문조사를 보면, ‘신혼 때 현관문 앞에서 사랑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묻고 있다. ‘뽀뽀’ ‘키스’ 등의 자극적인 보기를 내세웠지만, 첫 번째 보기는 ‘사랑한다는 말’이다. 다분히 이 보기를 고르도록 유도한다는 느낌이다.

언론사들이 결혼ㆍ취업 정보업체의 조사 결과를 자주 보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언론사가 흥미로운 여론조사를 수행하려면 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그러나 이들 정보업체들은 많은 온라인 회원들을 거느리고 있어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더욱이 이들은 업무의 속성상 회사 이름을 널리 알려야 된다. 그러나 결혼 정보업체는 방송 광고와 출연 등 홍보에 일정한 제약까지 있다. 따라서 설문·여론조사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홍보수단인 셈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홍보 수단을 채택하는 업종마저 점차 느는 추세다. 이러다가는 요즘 홍보에 혈안이 된 대부업체의 여론조사 결과도 머지않아 언론에 소개되지 않을까.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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