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그랜드 게임 … 평화 없는 평화조약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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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을 둘러싼 동북아의 환경이 변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이런 상황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중앙일보와 유민문화재단 공동 주최로 9~10일 열린 제10회 중앙(J) 글로벌 포럼에 참석한 우젠민(吳建民) 중국 외교학원 원장과 일본의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아사히신문 주필, 다나카 아키히코(田中明彦) 도쿄대 교수를 만나 동북아 정세에 관한 의견을 들어봤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주필

"부시 외교 실수 경험 대북 시각 유연해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한때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불렀지만 요즘은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달라진 배경은 뭔가.

"과거의 실수에서 배운 것 같다. 그동안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다분히 이상적으로 흘렀다. 실용주의적 시각이 모자랐던 것이다. 악의 축 국가와는 절대 대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런 예다. 마침내 그런 잘못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 열심히 매달리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인상도 받는다."

-핵 불능화를 위한 준비작업으로 6자회담 당사국 중 핵을 가진 3국(미.중.러)의 핵 전문가들이 4박5일 일정으로 11일 방북했는데.

"물론 아주 의미있는 진전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볼 때 우려할 점도 있다. 한국과 일본은 빠지고 핵 보유 3국 관계자들의 방북이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북한으로선 3국이 자신에게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 것이라고 나중에 주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미국에 연말까지 핵 불능화를 약속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제 북핵 문제는 잘 풀린다고 볼 수 있나.

"불능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불능화의 범위와 개념 정립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도 북.미 평화조약까지 거론하는 상황인데.

"종국엔 그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평화조약은 당연히 평화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체결돼야 한다. 우려할 점은 평화 없이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일이다. 평화가 없으면 당연히 평화조약도 있을 수 없다. 북한의 비핵화가 확실하게 입증돼야 한다는 말이다. 현존하는 핵무기는 물론 핵개발 능력까지도 완전히 없애야 가능할 것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에 대한 전망은.

"북.미 관계 정상화는 정말 크나큰 게임(big and grand game)이다. 리비아는 그런 일을 해냈다.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다시 살린 것이다. 북한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으로서도 중대 결심을 해야 한다.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빼는 작업이다. 그렇게 하려면 검증 가능한 핵 불능화(verifiable disablement)가 이뤄졌다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10월 2~4일 평양에서 7년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남북 정상이 만나 대화하는 건 좋은 일이다. 정치적 긴장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을 결정적으로 도와줄 파트너는 역시 남한 정부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도 물론 정치.외교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경제적.물질적 지원의 핵심은 남한으로 보고 있다."

심상복 기자

우젠민
중국 외교학원 원장

"6자회담 발전시켜 비핵화 이끌어내야"

-남북 정상회담을 보는 중국의 시각은.

"한국과 북한은 중국에게 모두 이웃이다. 남북 정상회담은 환영할 일이다. 중국은 주변 국가들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고 있다. 남북은 단일 민족으로서 관계를 발전시켜야 할 상황이다. 이는 물론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상회담의 성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남북 간 관계 발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통해 양측이 긴장을 완화해야 할 것으로 본다. 더 큰 안정을 위해 6자회담이 계속 발전해 한반도 비핵화를 성사시켜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여러 관계 국가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매우 큰 주제다. 2005년 9.19 성명에서 거듭 확인됐다. 당시 북한도 6자회담 당사국으로서 이 점에 분명히 동의했다."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는가.

"어떤 식으로 자신을 발전시킬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북한에 한국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눈부신 성장을 한 한국이 부럽다. 중국의 경험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단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방에 나서지 않았다면 오늘날 중국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올해는 한.중 수교 15주년이다. 양국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서로 매우 중요한 파트너가 됐다. 지난 15년간 쏟은 노력 덕분이다. 수교하던 해의 양국 무역 규모는 40억 달러 수준이었다. 이것이 지난해 1300억 달러로 불어났다. 정치적으로도 양국 관계는 좋다. 김대중 대통령 때의 '전략적 동반자'가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들어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양국의 민간 교류는 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급속하게 늘고 있다. 앞으로도 좋은 이웃, 좋은 동반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호주와 3각 동맹을 구성하면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중국도 러시아.중앙아시아 국가와 가까워지면서 이에 대항하는 분위기다. 중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동맹의 시대는 지났다. 과거의 방식으로 새 시대를 맞이하면 안 된다. 중국의 원칙은 어느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다. 러시아와는 호혜 평등의 원칙에 따라 관계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최종 목표는 지역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 체제 구축이다. 이와 함께 경제적으로 서로 보완 관계가 있어 협력이 이뤄지는 측면이 많다. 우리가 러시아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듯이 미국도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바란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전망은.

"협정의 타당성을 따져 보는 민간 차원의 연구는 이미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가능하면 빨리 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유광종 기자

다나카 아키히코
일본 도쿄대 교수

"노 대통령 남북회담서 북핵 문제 성과 내야"

-10월 초 열릴 남북 정상회담을 전망해 달라.

"6자회담 결과를 북한이 수용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9월 북.미 회담에서 진전이 있었던 것도 환영할 만하다. 이런 선상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 핵무기 개발의 위험을 줄이는 실질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향후 한반도 평화 가능성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변을 얻어내야 할 것이다. 이 밖에 핵문제뿐 아니라 남북 간 현안인 경제 협력, 안보, 인권 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일본인들은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득해주길 바라고 있다."

-일본이 6자회담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북한 핵문제 해결은 일본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이 현 단계에서 초기 단계 조치를 이행할지는 북한과 미국에 달려 있다. 일본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이 납치 문제에 관한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일본 정부가 북한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취하기 어렵다. 일본은 납치 문제에 관한 북한의 건설적 태도를 촉구함과 동시에 앞으로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지난주 몽골에서 열린 북.일 국교 정상화 2차 실무회의 결과를 평가하면.

"만족할 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1차 회의에서 납치 문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회담을 중단했던 북한이 이번에는 실질적 논의를 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일본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다. 이를 위해서는 핵문제와 북한이 주장하는 일본의 과거 청산, 일본이 요구하는 인권.납치 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 일본은 이번 회의에서 '일.북 평양선언'을 이행할 용의가 있음을 다시 밝혔다. 이제 북한이 결단만 내린다면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아베 정권의 첫해의 외교 성과를 평가해 달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매파'의 이미지였지만 외교 면에서는 전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비해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했다. 아베 총리는 취임 후 첫 순방지로 중국과 한국을 택했고,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4월 일본 방문에 이어 내년에는 후진타오 주석의 답방도 예정돼 있다. 대중(對中) 외교를 중시하는 모습이다. 이제 한.일 양국의 가시적인 관계 개선을 이룰 때가 됐다고 본다. 대북정책에서는 과거 관방장관 시절 납치 문제에서 강성 이미지로 일관했던 아베 총리가 다른 모습을 보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납치 문제 해법에서 북한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오영환.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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